
늦가을 무서리가 내릴 때쯤 피는 꽃 중에 국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국의 섬나라에 자생하는 갯머위도 초겨울까지 노란 꽃을 피운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갯머위는 잎이 머위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통영 오곡도의 무인등대 아래는 갯머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이른 봄에 나오는 봄나물의 제왕 머위를 경상도 사투리로 머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갯머위는 갯머구가 되어야겠지만, 통영 토박이 어른들은 엉뚱하게도 외머구라고 부른다. 머구는 머구인데 왜 앞에 '외'자가 붙었을까.
오곡도의 늙은 어부들은 감성돔을 닮은 망상어를 '외감싱이'라 하고, 볼락을 닮은 능성어를 '외뽈래기'라고 한다. '외'자가 붙은 것은 진짜배기보다는 아류의 것이라는 의미가 살짝 숨어 있다.
외갓집이라는 말도 친가가 아닌 바깥에 있는 갓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모두는 진짜를 더욱 빛나게 하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완전 가짜는 명사 앞에 '개'가 붙는 경우가 많다. 붉은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하고 희끗한 철쭉은 개꽃이라고 부른다. 참나리가 있는가 하면 개나리도 있다.
떡도 보리 딩기로 만든 맛없는 개떡이 있다. '빛 좋은 개살구'는 거의 조롱에 가까운 말이다. 개꿈을 꾸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러나 외머구는 이런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이름이다.


외머구꽃은 외할머니를 닮은 꽃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찬란한 계절은 온갖 꽃들에게 다 내어주고 늦가을에 찬 갯바람을 맞으며 홀로 핀다. 샛노란 외머구꽃이 피는 남쪽나라 섬마을로 그리운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자.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