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시대를 조망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심지어는 기성세대의 진부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들의 언어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특히 청년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서수 작가는 매우 좋아하는 작가로 시대를 관통하는 따끔한 일침이 매력 있다. 예를 들자면 그녀의 작품 중 젊은 근희의 행진, 장편 당신의 4분 33초, 단편 미조의 시대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실패하면서도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경력단절여성이지만 어렵고 황폐한 환경하에서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저자 이서수(1983~ )작가는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2014년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했다.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문학 동네에서 2010년에 제정되었고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 작품 중 전년도 한 해 동안 문예지를 비롯한 각종 지면에 발표한 중단편 소설 중 대상을 비롯하여 수상작을 선정한 젊은 작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나, 문희는 소설을 쓰고 있는 K장녀다. 골칫덩어리 엄마와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엄마는 항상 어디가 아프다며 끊임없이 병원을 다니며 주사를 맞는다. 나는 엄마나 실제로 아픈 곳이 없는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면서 병원에 다니는 '뮌하우젠 증후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엄마가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덜컥 홍대 근처 반 지하 빌라를 산다. 그리고 나의 연인 강하와 함께 동거를 하고 있는 나의 집에 와서 살고 있다.
근희는 엄마랑을 절대 못살겠다며 집을 나간다. 결국 임대료를 빌려준 사람은 언니인 나다. 나는 엄마가 못마땅하다.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은데 집값도 오르지 않을 것 같은 집을 무턱대고 사는 엄마를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동생 근희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튜브로 북튜브를 운영중인데 어깨가 푹 파이고 가슴이 드러나는 그런 옷을 입고 관종의 삶을 산다. 그런 근희를, 문희는 못마땅하게 여기며 설득하려하지만 '벗방'을 하겠다는 근희의 말에, 문희는 절연을 말한다. ‘그럼 어쩔 수 없지’라는 근희의 대답을 시작으로, 근희와 연락이 끊어진다.
그런 동생이 내게는 자립심이 없는 철없는 아이로 보인다. 그리고 근희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평탄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근희는 반론을 제기한다. 자신이 이러는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고 누군가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 탓이라고 말이다. 그런 근희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문희는 근희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집은 비어있었고 휴대폰도 집에 두고 나갔다. 휴대폰을 뒤져 보니 경찰서에 전화한 기록이 있어 확인해 보니 최근 사기를 당한 듯하다. 문희는 ‘인스타그램’으로 돈 버는 부업을 소개해 줄테니 돈을 보내라는 메시지에 속아 돈을 보내는 사기를 당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희는 근희가 갑작스레 사라지자 스토커 비슷한 구독자에게 살해당한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하다가 동생이 인스타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근희를 찾고자 나선다. 곧 강하를 통해 근희가 문희에게 손편지로 연락을 해오고 템플스테이에 가 있던 중에 편지를 쓰는 근희는 자신이 북튜버를 하며 얼마간은 지식을 배워가고 있다며, 사기를 당하게 된 데에는 언니로부터 빌린 보증금을 이자까지 모두 갚고 싶던 욕심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관종은 관종이라는 낙인을 견디어야 한다며, 자신은 자신의 '매력자본'으로 타인에게 관심받는 일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웹상이라는 가상의 생태계에 대한 견해와 함께 자신의 몸도 소중하므로 자신의 몸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벗 방은 안 하겠다고 전한다. 동생이 자신의 성적 매력을 토대로 비정상적 관심을 받으며 돈벌이에 심취해있다고 믿었던 그녀는 결국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꼰대적인 잣대로 재단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화자인 ‘나’는 30세 이후, 동생 근희는 30세 전으로 파악이 된다. 작품은 SNS시대를 살아가는 근희 같은 젊은 세대의 생각과 ‘나’의 엄마와 나로 이어지는 세대의 차이와 꼰대 적 사고방식과의 차이를 그려내고 있다. 근희는 사기를 당했지만 스스로를 추스르며 이겨나가고 있었고 엄마나 언니가 걱정할 정도의 무모하거나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편지를 통해 근희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근희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기성세대는 부모님을 봉양하고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그래서 딴 길로 벗어날 모범생의 삶을 살려고 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다르다. 우리는 어떤 이의 삶을 두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등 자신이 정해 놓은 틀에 규정지어 놓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당신의 4분 33초'에 나오는 주인공 이기동이나 '미조의 시대'의 주인공 미조를 바라보는 관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기동의 삶은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의사가 되지도 판사가 되지도 못했고 명성 있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지만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에게는 소음도 연주가 되었던 것처럼 누구나의 삶은 살아간다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삶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가치 없는 삶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미조 역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회사를 그만두었는데도 이직이 잦다고 경리로 취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늘 앞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아픔은 어디에서 기인하며 무엇 때문인 걸까.
이서수가 쓴 이야기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취업이 되지 않는 청년층, 정리 해고를 당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력 단절 여성, 모두가 이 시대의 젊은 근희들이다. 모두가 어렵고 모두가 힘든 시대이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고 서로 어떻게든 힘내고 버티어 내자고 소설은 말한다. 어렵지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은 다르고 스스로의 삶의 만족과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간섭과 지시가 아닌 인정하고 존중하며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하는 꿋꿋이 걸어가는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이 시대, N포 세대의 설움이 어찌 20, 30세대에만 있을 것인가. 청년들이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왜 인구가 줄고 있는지, 왜 이리 경제는 망가져 가는지 입으로 떠들면서도 정작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은 따끔한 경종을 울린다. 좀 더 따뜻한 시각 함께 살고자 하는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하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똘똘 뭉치지 않으면 공존과 상생은 없으며 더 나아가서 인류가 힘을 합쳐 지금은 ‘서로 함께’를 실천해야 하는 출발점이라고 말이다.
책을 읽으며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젊은 근희들의 앞은 결코 모든 것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이 세상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기를 두 손 모아 응원한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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