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행복한 삶을 가꾸는 지름길

곽흥렬

텔레비전 화면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다. 꾀죄죄한 얼굴에 피골이 상접한 팔다리, 땟국이 질질 흐르는 행색이 검은 대륙의 당면한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 광경을 무연히 바라다보고 있으려니 우리의 지난 시절이 떠올라 연민이 인다.

 

’70년대 초, 그러니까 내가 갓 중학교를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니 벌써 삼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이름하여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라는 기치 아래 잘살아보기 운동에 한창 박차를 가하던 시절이어서 내남없이 궁핍에 절어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여기저기 마른버짐이 피어나 께저분했고, 봉두난발한 머리는 온통 기계충으로 뒤덮여 볼썽사나웠다. 

 

반 편성이 끝나고 며칠 뒤 짝이 지어졌다. 나하고 단짝이 된 K는 면 소재지에 그의 집이 있었다. 입성이 단정하고 얼굴색이 뽀얀 품이, 단박에 보아도 꽤 있는 집 아이라는 짐작이 갔다.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얼굴에 새카만 피부, 찌든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차림새에다 소매 끝에는 쓱쓱 코를 문지른 얼룩이 번들거리던 초라한 모습의 여느 아이들과는 너무나 대비가 되었다.

 

기억의 필름을 되감아 보니 때는 분명 한겨울철이었던 것 같다. 오전 수업 마침종이 울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일제히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먹잇감을 보고 엉겨붙는 개구리들처럼 우르르 짝을 지어 몰려 앉았다.

 

그때였다. K의 도시락에서 내 휘둥그레진 눈길은 그만 얼어붙은 듯 딱 멈춰 버렸다. 뚜껑을 여는 순간 하얀 쌀밥 위에 노릇노릇 구워진 달걀 프라이가 가지런히 얹혀 있는 게 아닌가. 밥도 밥이지만 프라이한 달걀에 눈이 꽂혔다. 달걀이란 으레 쌀뜨물에다 멀겋게 풀어서 쪄먹는 것으로만, 그것도 할아버지 밥상에나 올랐다가 당신께서 드시고 남긴 것을 그저 맛만 볼 줄 알던 나로서는 언감생심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연이어, 반찬통이 열리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 파란 오이무침이 먹음직스럽게 도시락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대다수 가정이 노상 군둥내 풀풀 풍기는 묵은김치 하나로 긴긴 겨울을 나던 시절에 싱싱한 오이무침을 구경한다는 건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은 내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도저히 따를 수 없고 결코 가 닿지 못할 어떤 세계, 유난히 살결이 뽀얗던 그 아이가 꼭 별나라의 왕자처럼 아득히 우러러 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K는 자기 집이 아담한 규모의 한식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무나 큰 부담 갖지 않고 음식점 출입을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가난한 시골뜨기로서는 웬만해선 용기를 내지 못할, 그저 유한계층이나 드나드는 특별한 공간이었던 셈이다. 아마 그래서 도시락도 남달랐지 않았었나 싶다.

 

중학을 채 마치지 못하고 도회지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나는 아버지의 이종사촌 동생 되시는 분의 집에 얹혀 지내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식구를 들인다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당자들이야 나름대로는 잘해 준다고 신경을 썼으련만, 받아들이는 나로선 통 마음에 차지 않았다. 갖은 눈칫밥 먹어 가며 억지 춘향이로 한 두어 달을 근근이 버티다 결국 쫓기듯 보따리를 싸버렸다. 

 

막상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나와 놓고 보니 딱히 갈 만한 데가 없었다. 궁리궁리 끝에 달동네의 골방 한 칸을 얻어 자취생활을 하고 있던 고종사촌 형의 집을 찾아 나섰고, 사정사정하여 거기서 함께 지내기로 응낙을 받았다. 말이 집이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폐가나 다름없었다. 참깨를 박아 놓은 듯 까맣게 파리똥이 앉은 팔뚝 굵기의 구부정한 기둥이며, 누렇게 변색이 된 신문지 조각으로 덕지덕지 발라놓은 벽이며, 무심코 일어섰다가는 머리가 온전치 못할 정도로 납작 내려앉은 천장이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게 만들었다.

 

이튿날 어슴새벽이었다. 당시 중학 졸업반이었던 형이, 일찍 학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아침상을 봐 왔다. 된장을 풀고 어묵 몇 조각 둥둥 띄운 멀건 국에다 간장 한 종지, 이것이 밥상의 전부였다. 비록 아무리 궁핍에 절어 있었기로서니 그렇게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밥상은 난생처음이었다. 형은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렸지만, 유달리 입이 짧은 나는 도저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거의 굶다시피 하다 결국 또 다른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게 그 길고 힘겨운 자취생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아침을 거르길 밥 먹듯 하였고, 어쩌다 기껏 해 먹는 반찬이라고는 값싸고 손쉬운 콩나물무침 아니면 어묵국이었다. 어떨 때는 근 한 달가량을 라면으로 때우며 버텨낸 날들도 있었다. 그때 얻은 위장병의 후유증이 여태껏 나를 괴롭힌다. 지금도 라면이나 어묵이, 보기는커녕 아예 냄새조차 맡기 싫은 것은 그 시절 그런 음식들에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이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 이따금 아내 따라 시장엘 나가 보면 한겨울 철에도 싱싱한 오이가 지천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처럼 잘살게 되었던가. 불과 몇십 년 만에 우리는 풍요의 달콤함에 너무 깊이 길들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이런 풍경만을 보고 자란 요즘 세대들은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상상 속에서도 그려 보지 못할 것 같다.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로만 알고 있고, 밥이 없어서 굶게 생겼다고 하면 “굶긴 왜 굶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이렇게 반문한다는 오늘의 아이들에게 물건 귀하게 쓰라고 아무리 가르쳐 봐야 먹혀들 리가 만무하다. 돈이면 다 되는 것으로 여겨 일쑤 아무렇게나 대한다.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음식을 먹다 밥풀 한 알만 흘려도 아버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었다. 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부리면 야단이 난다. 어른들은 쌀 한 톨 생산해 내기 위해 흘린 농부들의 여든여덟 번에 걸친 노고를 들먹이며 그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곤 하셨다. 

 

우리나라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는 그 지긋지긋한 IMF의 터널을 지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구조조정이다 청년 실업이다 자영업의 몰락이다 하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몰린 사람들의 가족 동반자살 사건이 사흘이 멀다고 마음을 출렁이게 만든다.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게 다들 생활 형편은 훨씬 나아졌음에도 왜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꼬리를 무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남과의 비교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할 때 가장 힘들어한다. 지금 가진 자는 너무 먹어 탈이고 못 가진 자는 아예 먹지 못해 탈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두 계층 사이의 마음의 벽은 점점 높아져 갈 수밖에 없다. 가진 자의 흥청망청 분별없는 소비는 어찌 보면 못 가진 자의 가슴에다 치유가 힘든 대못질을 해대는 행위일지 모른다. 이로 인해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의 막연한 적개심이, 이따금 불특정 다수를 노린 이른바 ‘묻지 마 범죄’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못 가진 자의 그러한 행위가 정당하다고 두둔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세상에다 대고 분노의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가 지구별이라는 큰 배에 운명을 함께 맡기고 있는 승객들이 아닌가.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안전한 항해를 위한 필수 요건일 터이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게 돌아갈 몫까지 자신이 차지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고, 반대로 못 가진 자는 가진 자가 자신의 몫을 나누어주어서 역시 감사하다는 마음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향한 이런 열린 생각 없이는 너도 나도 함께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만다. 특히 가진 자의 양보와 희생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열쇠가 될 것이다. 

 

흔히 가진 자들 가운데는 본래부터 제가 잘나서 그처럼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자아류에 치우친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의사는 환자가, 회사 사장은 고객이, 할인점 주인은 소비자가 있었기에 가진 자로서의 삶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많이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하리라.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일 수 있다는 ‘더불어 삶’의 실천이, 가진 자들 자신의 안녕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준다. 

 

요새 세상에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집이라 하더라도 한겨울에 오이무침 못 해 먹을 가정이 어디 있을까.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뻐기며 살아야겠다는 지나친 욕망이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게 만든다. 파이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없다고 했다. 그러기에 욕망을 다스릴 지혜를 갖지 못한다면 앞날의 불행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다. 

 

분에 넘치는 욕망의 덫에서 헤어나 지금 나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겠다. 남의 일이 바로 나의 일이 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행복한 삶을 가꾸는 지름길이 아닐까.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11.26 10:11 수정 2024.11.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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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