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 시험에 급제한 사람은 그 시대 합격자 명단인 방목(榜目)에 그 이름이 오른다. 방목에 함께 이름이 오른 사람들은 '동방(同榜)'으로 불렸는데, 오늘날의 '동기생'과 그 의미가 거의 일치한다. 조선시대 동방들 사이에는 일종의 유대감이 형성되어 동방들끼리 모여 친목을 다지는 모임을 갖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모임을 방회(榜會)라고 불렀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 동창이나 고시 동창 같은 동기생 문화는 근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최소한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방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 방회도(榜會圖)나 방회에서 지은 시 등 여러 가지 자료가 현전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조선시대 동방들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진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전하는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문과급제 동방들의 것이다. 비록 무과급제 동방들과 관련한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당연히 그들도 문과급제 동방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교류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해에 급제한 문과급제자와 무과급제자 사이에도 서로 동방이라는 의식이 있었을까?
필자는 일전에 "전라좌수영 우후 이몽구의 본관" 칼럼을 쓰면서, 같은 해에 급제한 문과급제자 유공진과 무과급제자 이몽구가 서로 동방으로 인식했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아쉽게도 그 내용이 매우 간략하였기 때문에 본 칼럼에서는 조금 더 이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이나 연구서가 있다면 좋겠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이러한 연구 자료를 찾기 어려워 『난중일기』 등의 사료를 통해 검토해 보려고 한다.
『난중일기』, 1592년 2월 21일
정 조방장(정걸)도 와서 만나고 황숙도(능성현령 황승헌)도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원문] 丁助防將亦來見 黃叔度亦來同醉
위 『난중일기』에 언급된 황숙도는 황승헌(黃承憲, 1540~미상)을 말한다. 황승헌은 당시 능성현령이었으며, 숙도는 그의 자이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이 과거에 합격한 해인 1576년 문과에 급제하여 「만력4년병자식년문과방목」에 그의 신상이 실렸다. 『난중일기』에서 황승헌을 그의 자 숙도로 일컬은 점을 통해 이순신과 황승헌이 친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난중일기』, 1594년 3월 30일
늦게 삼가현감 고상안이 와서 만났다.
[원문] 晩 三嘉倅高尙顔來見.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자는 사물(思勿), 호는 태촌(泰村),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1594년 4월 한산도에서 열린 무과시험에서 참시관(參試官)의 임무를 맡았다. 「만력4년병자식년문과방목」에 따르면 그는 157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상안은 그의 문집 『태촌집』에서 이순신과 동방임을 언급하면서(統制則以同年之故) 이순신의 외모에 관해 간략히 묘사하였다
『난중일기』, 1595년 8월 26일
저녁에 부사(체찰부사 김륵)와 만나서 편안히 이야기하였다.
[원문] 夕 副使相會穩話.
김륵(金玏, 1540~1616)의 자는 희옥(希玉), 시호는 민절(敏節), 본관은 예안(禮安)이다. 그는 임진왜란 발발 직후 경상좌도 안집사로 임명되자 민생 안정과 군사 활동을 전개하여 경상좌도가 전란 초기의 혼란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선조실록』의 기사와 김륵의 문집인 『백암집』에 따르면, 그는 1595년 체찰사 이원익의 추천으로 체찰부사가 되어 이원익과 함께 남부 지방을 순회하였다. 『난중일기』의 당시 기록에도 체찰사와 체찰부사 일행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만력4년병자식년문무잡과방목』에 따르면 김륵은 157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난중일기』, 1596년 9월 1일
일찍 출발하여 석제원(지금의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에 있었다.)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밤 10시경에 영암에 이르러 향사당(유향소)에서 숙박을 하였다. 정랑 조팽년이 와서 만나고 최숙남도 와서 만났다.
[원문] 早發到石梯院 㸃後 二更到靈岩 宿于鄕舍堂. 趙正郞彭年來見 崔淑男亦來見.
조팽년(趙彭年, 1549년~1612)의 자는 경로(景老),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만력4년병자식년문과방목」에 따르면 157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팽년의 문집인 『계음집』에 수록된 그의 행장에 따르면 그는 갑오년(1594년)에 고향 강진에 돌아와 있었으므로, 강진과 가까운 영암에 이순신이 머물자 그를 찾아온 것으로 짐작된다. 조팽년의 행장에 따르면 그는 계사년(1593년)에 조정의 명으로 한산도에 내려와 이순신을 만나 시 한 편을 지어 주었는데, 이 시는 『계음집』에는 「상이통제순신(上李統制舜臣)」이라는 제목으로, 『이충무공전서』에는 「선유한산도정이통제(宣諭閑山島呈李統制)」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난중일기』, 1596년 9월 19일
이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였는데, 술을 마시면서 밥은 먹지 않았으므로 취하였다. 광주목사의 별실로 들어가서 종일 흠뻑 취하였다.
[원문] 是朝 光牧來 同朝飯 因作酒不食而醉. 入光牧別室處 大醉終日.
최철견(崔鐵堅, 1548~1618)의 자는 응구(應久),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576년 진사시에 급제하여 「만력4년병자2월16일사마방목」에 그의 신상이 실렸다. 『광주목읍지』의 「읍선생안」에 따르면, 최철견은 을미년(1593년)부터 병신년(1596년)까지 광주목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에 전라도사를 지내어 이순신과 이전부터 친분 관계가 있었다. 최철견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외할아버지이다.
『난중일기』, 1596년 9월 26일
저녁에 부(순천부)의 사람들이 쇠고기와 술을 마련해놓고 오라고 청하기에 사양하였지만, 고을 수령(배응경)의 간곡한 청으로 인해 잠시 마시다가 헤어졌다.
[원문] 夕 府人爲設牛酒請進固辞 而因主倅之恳 暫飮而罷.
『난중일기』, 1596년 10월 8일
순천부사(배응경)와 서로 이별 잔을 나누고 보냈다.
[원문] 順天相与別盃而送.
배응경(裵應褧, 1544~1602)의 자는 회보(晦甫),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1576년 문과에 급제하여 「만력4년병자식년문과방목」에 그의 신상이 실렸다. 『승평속지』의 「선생안」에 따르면 을미년(1595년) 11월부터 병신년(1596년) 11월까지 순천부사를 지냈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10일
저녁에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이 와서 만났다. 조용히 이야기하다가 대화가 임진년에 적을 토벌한 일에 미치어서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또한 산성으로써 요해지를 설치하지 않은 아쉬움과 지금의 토벌과 방비가 허술한 것 등을 말하였는데, 밤이 깊어지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도 잊고 논의하였다.
[원문] 夕 元帥從事官黃汝一來見. 從容間 言及壬辰討賊之事 莫不嘆美. 又言山城無設險之恨 當今討備虛疎等事 不覺夜深 忘歸論話.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의 자는 회원(會元),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1576년 문과에 급제하여 「만력4년병자2월16일사마방목」에 그의 신상이 실렸다. 1596년 겨울에 도원수 권율의 막하가 되어, 1597년에는 백의종군하는 이순신과 많은 교류를 하였다. 『난중일기』의 1597년 일기에는 종사관 황여일에 대한 언급이 20여 차례나 나타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난중일기』를 통해, 무과급제자로 관직에 나아간 충무공 이순신이 같은 해 문과에 급제한 인물들과 상당한 친분 관계를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고상안이 그의 문집에서 그가 이순신과 같은 해 합격한 점을 언급한 내용은, 당시 사람들이 같은 해 합격한 문과급제자와 무과급제자를 동방으로 인식했음을 명시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만력4년병자식년문과방목(萬曆四年丙子式年文科榜目)」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만력4년병자식년문무잡과방목([萬曆四年丙子式年]文武雜科榜目)」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만력4년병자2월16일사마방목(萬曆四年丙子二月十六日司馬榜目)」
한국고전종합DB, 김륵(金玏)의 『백암집(栢巖集)』 권7, 「백암선생연보(栢巖先生年譜)」
한국고전종합DB,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 권4, 「효빈잡기(效嚬雜記)」-「총화(叢話)」
한국고전종합DB, 조팽년(趙彭年)의 『계음집(溪陰集)』 권6, 「행장(行狀)」
국립중앙도서관, 『승평속지(昇平續誌)』, 「선생안(先生案)」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광주목읍지(光州牧邑誌)』, 「읍선생안(邑先生案)」
배진희/이은주, 「<희경루방회도>속 인물들의 복식 고찰」, 『문화재』 제51집(4), 2018, 국립문화재연구원
정해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좌도 안집사 김륵의 역할과 활동」, 『영남학 제28호』, 2015,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