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의 시학은 동양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동양 문화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중국의 공자의 『중용』, 『시경』, 유불선의 전통이 시학의 근본적인 뿌리가 형성되어 있다. 서양의 시학은 그리스의 플라톤의 시학을 기점으로 기독교적인 사상이 서양 시학의 근본적인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 정신은 도(道 )다. 도는 말로 표현이 불가하며 따라서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다. 도가 있어 모든 사물과 온 세상은 지금의 양상으로 존재한다. 기(氣)는 도의 생성, 운행, 변화를 설명하며, 그 생성과 운행, 변화에는 법칙이 이(理 )다. 도라는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한 도가 바로 무(無)다. 불교의 공 역시 무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중국의 우주관은 도, 무, 이, 기가 일체화된다.
반면에 서양의 문화 정신은 존재(Being), 신(God), 이념(idea), 물질(matter), 실체(substance), 로고스(Logos)로 요약되는데, 서구의 문화 정신은 우주 본질을 무가 아니라 유이고, 허공이 아니라 실체이다. 따라서 “서구인들은 무엇을 보든지 간에 실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중국인들은 기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라고, 중국의 인민대학교 장파 교수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 정신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의 우주관이 전혀 이질적이어서 서로 융합이 불가하다. 따라서 모든 시학에서도 적용 방법에 있어서 차이점이 많다. 일반적으로 동양 시학은 일원론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생각을 감정 이입하여 관념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짙고, 반면에 서양 시학은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대상으로 할 때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은유와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이미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는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세계의 학문적인 체계는 서양의 학문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시학도 이미 서구의 문화정신을 받아들인 서구의 시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시경을 텍스트로 학습하고 동양정신의 고집하는 시인들의 시학은 일원론적 입장을 고수한다. 따라서 관념적이고 주관이 개입되어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객관적인 정서로 표현되지 못한 결과,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옛날 유명한 시인들의 한시를 보면, 한자의 운에 따라 정형성을 고수하면서 주로 자연의 풍광과 사람과의 관계를 미화시킨 서경의 미화를 노래하는 경향이어서 현대의 정서와는 전혀 달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정서를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관념적으로 진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습작기 시인들이 우를 자주 범하는 것처럼, 자신 혼자만의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인 상관물을 등장시키거나 경험을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감각적으로 묘사하거나 진술하는 시창작의 기본적인 방법을 무시하고, 다의적인 의미를 지닌 관념어나 한자어로 자신의 생각을 결합시켜 시인 혼자만 알고 있는 수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관념적인 심상을 이미지로 착각하고 설명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관념시와 유사하게 장황한 미사여구로 자신의 시적 기능의 미숙함을 은폐하려하기 때문에 자신이 창작한 시가 일반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자신이 장황한 시작노트나 해설을 곁들어야 독자에게 전달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현대시는 노래보다는 그림과 결합한 시다. 정형시가 아니라 자유시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인 시의 원형을 고수하려는 시관을 갖는 사람들은 공자의 『시경』을 텍스트로 공부하고 그러한 경향의 시가 우수한 시로 생각한다. 이미 『시경』의 시는 문화 정신의 배경이 다르다. 현대시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노래와 결합되고, 정형적이고 관념적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시가 모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유일하게 시조 장르뿐이다. 그러나 시조는 서구의 문화 정신으로 구현된 현대시의 창작 정신과는 너무 이질적이다. 다시 말해 정형률에 얽매여있고, 노래와 결합되어있다. 따라서 동양의 문화 정신과 우리의 전통 시로 시조 장르를 존속시켜 나가려면 현대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양복을 입고 갓을 쓰는 격이 된다. 현대시조로 탈바꿈하려면 정형률은 그대로 두더라도 구태의연한 관념어로 주관적인 정서로 글자를 퍼즐 맞추는 식의 창작 방법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무능한 시인들이 쉽게 자신의 시적 능력을 우리 시의 우수성을 표면으로 내세우고 갓을 쓰고 있는 꼴이 되고 만다.
현대시조가 되려면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표현되어야 현대시 정신에 맞게 시조 장르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시조의 성격과 유사한 일본의 전통 시인 하이쿠의 경우는 노래의 성격과 거리 있는 그림의 성격으로 정형률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도 오랫동안 존속해왔다.
최근 들어 디키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과는 전혀 상반된 사진을 설명하거나 미숙한 습작기 시인들이나 문학놀이꾼들의 자신의 시적 무능력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 쉬운 장르적인 성격이 전혀 없는 오늘날 우리나라 시대적인 문학 현실이 만들어낸 사진 설명글이다. 그것은 자신의 관념으로 그린 머릿속 심상을 진술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는 시인들이 자신의 관념적인 생각을 사진이 이미지로 보여 주고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시 정신으로 자신의 무능을 은폐한다.
그나마 핸드폰의 카톡 기능을 활용하여 자신의 디카 글을 통해 자신이 시인임을 홍보하려는 문학놀이꾼의 기호에 적합하다. 따라서 거짓된 마음으로 시인 노릇을 하고 싶은 가짜 시인들의 놀이문화가 유행하는 한국 문단의 현실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임기응변식의 글이 디카시라는 점이다. 따라서 디카시가 시적인 미감을 갖고 장르로 자리 잡으려면 사진이 보여 주는 현실이라면 그 이면의 숨어있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압축해 표현한다거나 또는 아포리즘적인 진술, 그리고 다른 유사 이미지와 결합하여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표현하여야 현대적인 시의 장르로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시조가 노래 성격을 벗어나 관념적인 주관적인 표현에서 체험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현대 정신을 담아 발전해 나갈 수 있듯이 디카시의 경우는 이미 보여 주는 사진과 유사한 경험을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현대 정신의 담는 시의 장르로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경우는 시와 시인이 별개로 시가 우수하면, 그 시에 대해서만 독자들이 공감하고 인정해 주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무리 우수한 시라 하더라도 작품 자체만 가지고 인정되지 않고, 시인의 사생활과 인격과 연관을 짓는 시와 사람의 일체화라는 동양의 문화 정신으로 우수한 시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시학은 서구의 시 창작 방법론에 시를 창작해 놓고 시인의 인품과 결부되어 평가받는 모순은 동양의 문화 정신이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문화 정신은 서양처럼 사회적인 효용을 강조하는 기능주의 입장이 아니라, 시를 쓰는 목적이 인격 수양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를 써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허명의식을 버리고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심성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참다운 자세일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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