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번지 없는 주막

백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2024년 12월이다. 해(年)와 연(年)의 경계시간대에 달력이 한 장 달랑거린다. 다가오는 2025년은,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120년, 을유해방광복(乙酉解放光復) 80년이 되는 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과 병력동원권을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겼고,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이름과 통치권을 통째로 저들에게 뺏앗겼었다. 그 세월, 경술국치일로부터 1945년 해방광복일 까지가, 34년 351일이다.

 

그 시간의 터널은 식민지 메카니즘이 통용되던 공간이었다. 그 때는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번지가 없는 내 나라 내 땅에서, 남의 나라 국민으로’ 살았다. 남의 나라 말로 이름을 고치고, 남의 나라 군인으로 만주 봉천전투전역으로, 태평양 동남아전투전역으로 징집되고, 나라를 빼앗아 간 도둑의 소굴 같은 일본 본국으로 피신을 했었다.

 

그 시절에도 노래는 불렸다. 가요통세(歌謠通世),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치세락(治世樂) 난세분(亂世噴) 망국탄(亡國嘆)인데, 그 식민지 시절은 망국탄의 노래가 불렸다. 그 중의 한 절창이 백년설의 목청을 울리고, 대한제국민과 임시정부 대한민국 국민을 울린 망국탄가(亡國嘆歌), <번지 없는 주막>이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구진 비 나리 던 그 밤이 애절 구려

능수버들 태질 허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든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는 불같은 정이었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든 사람아

 

깨무는 이빨에는 피가 터졌소

풍지를 악물며 밤비도 우는 구려

흘러가는 타관 길이 여기만 아닌데

번지 없는 그 술집은 왜 못 잊느냐.

 

우리민족은 19세기말~20세기 중반까지를 일본제국주의의 간섭과 통제, 식민통치의 터널 속에서 치욕적인 시대를 살아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부터 1945년 해방광복까지 70년, 한국근대사라고 하는 기간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피폐한 현실을 견디어 낸, 여러 저력 중에 통속적인 가사와 가락을 얽은 유행가가 차지한 에너지를 그 누가 감히 절감폄훼(切感貶毁)하랴.

 

그래서, 이런 노래를 ‘트로트’라고 통칭하지 말고, ‘아랑가(我浪歌·ArangGA)’개명(改名) 혹은 신작명(新作名)하자는 것이다. 트로트라는 용어는, 191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FOX Trot, 이후 이를 모방한 일본의 도로또라는 용어를,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통용하기 시작한, 사전적 의미와 감성적 공감이 서로 엇박자인 용어이다.

 

때때로 진화와 발전에 대한 개인적이거나 민족적·국가적인 갈망은, 열등감과 복수심을 농익게 하는 콤플렉스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향한 갈망은 민족적인 저력으로 승화했다. <번지 없는 주막>, 이 노래가 그런 에너지의 옹달샘이었다.

 

이 노래 속의 주막(酒幕)은 탄막(炭幕)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후 조령원, 동화원 등 관아(官衙)에서 설치한 원(院)의 기능이 쇠퇴하고, 쉬어가는 참(站)마다 참점(站店)을 설치하여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이때 보부상이나 행상 같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들을 위한 주점, 주막이 등달아 발전하였다.

 

이것이 도시에서는 객주와 여각이, 시골에서는 주막이 여인숙 구실도 하였는데, 19세기 후반에는 촌락 10∼20리 사이에 1개소 이상의 주막이 있었고, 특히 장시(場市)가 열리는 곳이나 역(驛)이 있는 곳, 나루터, 광산촌 등에 주로 있었다.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친구 포숙아의 추천으로 재상이 된 관중이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30리마다 이동 상인들의 접대기관인 객잔(客棧)을 설치하여 상거래를 활성화시켰던 점을 착안했던 시책이다. 티벳, 차마고도의 차마객잔(車馬客棧)도 여기서 유래한 걸이리라.

 

차마고도(茶马古道)는, 중국 윈난성, 쓰촨성 등 서남부에서 티베트·인도에 이르는 고대의 오솔길 상업통로이다. 중국 서남부의 횡단산맥 지역과 시짱고원 사이에 위치하며 서남지구 각 민족 간 경제 및 문화를 교류의 중심축이었다.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차마고도(茶马古道)는 대략 서한(西汉)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차마고도를 통해 차(茶) 이외에도 자기, 비단 등의 물품과 파미르의 약재 등 산간지역의 특산품의 교류가 진행되었다.

 

차마고도는 마방(馬幇)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시짱 지역의 말 등 물품의 교역을 위해 다녔으며, 차마고도의 경로는 주요 8개 노선이다. 이들 경로는 길이가 약 5,000㎞로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눈에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雪山)들과 진사강, 란창강, 누강이 수천 ㎞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이 세 강이 이루는 협곡지역은 윈난 삼강병류 보호지라는 명칭으로 2003년 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7년 KBS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이곳에도 수많은 ‘번지 없는 주막’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돌길 난간이나 약간의 펑퍼짐한 기슭에는 옛 모습을 연상케 할 만 한 객잔들이 낯 설은 나그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우리나라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져 온 주막에서는, 술이나 밥을 사먹으면 보통 음식 값 외에는 숙박료를 따로 받지 않아 숙객에게 침구를 따로 제공하지 않았으며, 1∼2칸의 온돌방에서 10여 명이 혼숙하였다.

 

그래서 옛날에 먼 길을 나서는 행객들은 괘나리 봇짐 속에 홑이불 한 자락을 돌돌 말아서 짊어지고 다녔다. 주막은 여염집과 별로 다를 바 없었으나, 나그네들이 자는 방은 주막에서 가장 큰 방으로 봉놋방이라고 하였다. 그 시절 우리나라 전역에는 5일장이 1천6백여 개가 펼쳐졌었다.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주막은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인데 내성천·금천·낙동강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삼강이라고 하며, 김해에서 올라와서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 가야하는 곳이었다.

 

마지막 주모는 안주인 유옥연 할머니이며, 19세부터 2005년 90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70년 동안 삼강주막을 지켰다. 이렇게 한양으로 이어지는 과거급제를 향한 길 주막마다에는, 느티나무가 이정표로 심겨졌고, 오늘날 이 나무가 우리민족을 혼과 기와 얼을 품고 천년기념물 보호수로 서 있다.

 

<번지 없는 주막>을 열창할 당시 25세, 백년설은 1941년 일제가 지원병제를 실시하면서 그들의 의도를 왜곡하여 주장하던 대동아전쟁 참전을 독려하는 친일군국가요 <지원병 혈서>등을 불렀다.

 

이후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맡았다가, 1963년에 은퇴했으며, 가수 심연옥과 결혼(재혼)한 뒤, 1979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함께 이민을 갔다가, 1980년 12월 6일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번지 없는 주막> 노래는 1961년 강찬우 감독, 김승호·박암·도금봉 출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영화는, ‘한동안 밀수 배에 가담해 왔던 주인공은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고 자수하여 감옥형을 살고 나온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밀수에 다시 가담한다. 그래서 아내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했지만 그는 그가 다시 배반할 것을 염려한 일당들에 의해 죽고 만다.’

 

이 기구한 사연의 상연 중간에 <번지 없는 주막> 노래가 흐른다. <번지 없는 주막> 유행가 아랑가의 주인공은 대중이고, 그 대중은 우리 민족이다. 이런 면에서 유행가를 서정적 감흥으로 애창하던 대중들의 가슴속에 꿈실거리던 민족의 저항심(抵抗心)은, 그 당시의 현재이성(現在理性)으로 읽어야 한다.

 

이 노래는 1933년에 일본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발표하고 시행했던, ‘레코드취체규칙(音盤取締規則. 1933.5.17)의 틀 속에서, 원곡 노랫말 가사와 가락을 그대로 대중들이 통창했던 대범한 곡조였다.

 

2024년 12월~2025년 1월, 시간(時間)과 시기(時期)와 절기(節氣)와 해(年)와 년(年)의 경계지대에서, 우리 민족의 식민지 시절, 국제정치적인 국가권력의 상관관계 메카니즘 속에서, 번지를 잃어버렸던 민족의 절창, <번지 없는 주막>을 펼쳐드리면서, 동해 바다 건너로 두 눈을 겨눈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12.03 10:46 수정 2024.12.03 10:5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