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年)와 년(年)의 경계시기,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절기이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이다. 통설, ‘푸른뱀의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 120년, 1945년 해방광복으로부터 80년이 되는 각성의 해다. 생각이 깊어진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정서적 감응 온도, 시대정신과 대중들의 감성온도는 몇 도인가? 스산하다. 이 차가운 한절(寒節)에 나라와 민족의 오늘의 현실과 지내온 역사 이력의 질곡을 생각하며, 1959년 김용만 선생이 절창한 아랑가(ArangGA) <생일 없는 소년>을 스토리텔링 한다.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 / 한도 많은 세상길에 눈물만 흘립니다 / 동서남북 방방곡곡 구름은 흘러가도 / 생일 없는 어린 넋은 어디가 고향이오.
이 노래 속의 중간대사는 아들을 버린 어머니가 아들의 꿈에 나타나서 전해주는 몽중언(夢中言)이다.
‘얘, 철아 너희들은 어떻게 지내느냐 / 죄도 많은 이 애미는 모진 풍파와 싸우다가 / 너희들을 버렸단다 / 그리고 너희 아버지는 다시 못 올 먼 길을 떠났단다. 어머니, 아~ 또 꿈이었구나.’
절절한 노랫말, 2절 가사는 이렇다.
어머니 아버지 왜 말이 없습니까 /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러나 살겠어요 / 그리워라 우리 부모 어드메 계시 온 지 / 꿈에라도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비춰주오.
<생일 없는 소년>은 1958년에 먼저 노래가 불리고 1959년에 음반으로 발매된 듯하다. 아세아레코드 앨범번호 A102, A103이고, A면에 황금심이 부른 <은피리 옥피리>, 뒷면에 김용만이 부른 <생일 없는 소년>이 실렸다. 이 노래는 6.25전쟁의 눈물겨운 상처의 부산물(副産物)같은 곡조다. 기타 반주로 시작되는 전주(前奏)는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를 연상시킨다.
이 노래가 발표된 당시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총성이 멎은 지 5년여가 되던 시절이다. 이 때 태어난 이들이 베이비부머이다. 단기 4288년, 쌍팔년도로 통설되는 1955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탄생한 우주들이다.
국민소득은 100$에 미치니 못하던 시절이니, 생일날을 알면서도 축하의 상(床)을 챙기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러니 하물며 부모도 없고(모르고) 생일 날짜도 모르는 전쟁고아는 어찌했을까. <생일 없는 소년>은 박단마가 부른 <슈 샤인 보이>에 이어진 시대이념이고, 당시를 살아낸 대중들의 서글픈 감성이다. 1961년에 불려 진, 윤일로의 <집 없는 아이>가 맥락(脈絡)을 같이 하는 시대이념의 절창(絶唱)이다.
이 애절한 노래는, 1966년 안현철 감독의 영화로 탄생한다. <생일 없는 소년>(A Boy without Birthday), 조동희·허명자·이예춘 등이 열연한 아성영화사 작품이다. 영화는 6.25전쟁고아 김성필의 군의 실제 삶을 얽은 것이었단다. 그는 생일이 없다. 아니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생일이 언제라고 일러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사고무친(四顧無親)한 고아였지만 희망을 가지고 굳세게 살아간다.
그러면서 그날그날 애환을 일기 속에 적었다. 내일을 향한 꺾이지 않는 꿈과 하루하루의 피나는 노력을 적은 기록이었다. 그 일기가 어느 독지가의 호의로 출간됨으로써 그는 밝은 내일을 약속 받기에 이른다. 주인공 김성필은 독지가들이 그의 예금통장으로 후원금을 예금시킬 때 많이 울었단다. 생일도 모르는 본인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신뢰에 감동한 눈물이었으리라. 아쉽게도 이 영화는 남아 있는 영상자료가 없단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통계에 의하면, 6.25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우리국군은 사망 137,899명, 부상 32,838명, 실종 및 포로 450,742이다. 국제연합군은 사망 40,670명, 부상 9,931명, 실종 및 포로가 104,820명이다. 북한군은 사망 508,797명, 부상 98,599명이었다. 중국 인민의용군은 사망 148,600명, 부상 25,600명, 실종 및 포로가 798,400명이었다.
이때 발생한 전쟁고아는 10만여 명이 넘고, 전쟁미망인 10만여 명, 이산가족은 1천만이었다. 이 10만여 명의 삶을 엮은 노래와 영화가 <생일 없는 소년>이다. 호모사피엔스. 지혜로운 사람, 직립보행을 하면서 이 지구상에 살다 간 사람은 230억 명 정도란다. 설(說)에 따라 다른 견해도 있으리라. 오늘날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은 80억 명이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탄생할 생물학적 확률은 2.5억~3억분의 1정도가 된단다. 이중에 생일이 없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이 모두는 엄마의 태반에서 자라서 세상에 나왔다. 그날이 생일이다. 그러니 생일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생일을 모르는 사람은 더러 있다. 여러 가지 연유가 있으리라. 그러면, 김용만 선생의 절창 노래는, <생일 없는 소년>이 아니고, <생일을 모르는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붙였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역학적으로 저마다의 사주팔자가 있다. 일종의 학문적 통계를 통하여 풀어내는 삶의 예정된(예측하는) 말의 꼬투리다. 생년생월생일생시(生年生月生日生時), 이 여덟 글자가 바로 팔자(八字)이다. 생일을 모르는 이, 이들이 스스로의 생물학적 출생일을 알게 할 수 있는 날, 혹은 스스로 알아차릴 날은 언제일까. 그날 이후, 펼쳐보는 저들의 팔자가, 역학적으로 진팔자(眞八字)일 텐데...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생일을 모르는 이들이 남겼거나, 현재진행형으로 남기고 있는 현실과 역사의 실루엣들은, 저들의 가팔자(假八字)와 진팔자(眞八字)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로 연계될까. 그 현상과 역사 속의 실루엣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름에 어떻게 점철되고 있는가?
우리 민족과 나라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 해방광복이 된, 80주년 차가 되는 2025년은, 나라와 국민들의 그림자가 비틀거리지 않는 본체가 반듯한 현상과 현실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아직, 완자창 밖이 캄캄하다. 빛이 이 깊은 어둠을 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밤과 새벽의 시간의 경계지대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다. 사그라지는 어둠, 밝아오는 빛은 자연의 섭리이다.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이어지는 절기의 밤과 낮이, 낮과 밤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사람(끼리)의 인리(人理)로 섭리(燮理)할 수가 없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