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의 겨울은 11월부터 시작된다. 제주에 부는 거칠고 매서운 북서풍은 한라산이 너무 높아 넘지 못하자 백록담을 돌아 나와서 서귀포 앞바다에 한기를 불어 넣는다. 바람이 세고 바다가 거칠어 ′살기 힘든 포구′라는 뜻으로 ′못살포′라는 원이름을 가진 모슬포는 방어 축제로 유명한 어항이다. 수온과 먹이를 따라 여름에 동해로 먼 여행을 떠났던 방어는 모질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이때쯤 모슬포 앞바다에 유유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동해의 깊은 바다를 유영하며 거센 조류를 헤치고 이곳까지 여행하는 동안 방어는 지방이 가득 차고 살이 단단해진다. 이리하여 겨울의 전령 제주 방어는 식감이 쫄깃하고 맛은 고소한 겨울철 최고의 횟감이 되는 것이다.
방어(舫魚)는 농어목 전갱이과의 온대성 바닷물고기다. 방어는 2~4월이 산란기로 11월부터 2월까지 월동과 산란을 준비하기 위한 왕성한 먹이활동으로 지방과 살을 찌우기 때문에 이때가 가장 맛이 좋은 제철로 친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더불어 두터운 지방층은 참다랑어 뱃살 부럽지 않을 만큼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겨울에 맛보는 ′방어′는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제철 생선으로 통한다. 그렇지만 ″여름 방어는 개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수온이 높아서 방어 살에 탄력이 없을뿐더러 아가미에 충(蟲)이 있을 수 있어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방어는 겨울 방어가 ′진짜′로 가장 대접받는다.
방어는 주로 국내 자연산, 국내 양식, 일본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산 방어는 주로 동해산이나 제주도산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자연산 방어가 많았으나 요즘은 통영의 해상가두리 양식장에서 키워서 유통되는 양식산 방어가 대부분이다. 국내 방어양식은 알에서부터 부화시키는 완전한 양식 방법이 아니라 주로 방어 새끼를 잡아 가두리에서 기르는 축양 방식이다. 여름철 동해나 제주지역에서 5~7kg 정도의 방어를 잡아 해상가두리 양식장에서 먹이를 먹여 10kg 이상의 대방어로 키워서 판매한다. 일본의 경우 방어에 대한 수요가 높아 일찍이 양식기술이 발달했으며 30년 전에 방어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 때문에 생산량이 많고 가격이 저렴해서 활방어가 국내로 수입되어 유통되기도 한다.
방어는 무게에 따라 소방어(3kg 미만), 중방어(3~5kg), 대방어(6kg 이상), 돼지방어(대방어 중에서 10kg 이상)로 나뉘는데, 살부터 내장, 껍질, 대가리까지 버릴 게 없다. 대방어는 덩치가 큰 만큼 횟감으로 뜰 살점이 많고 씹히는 맛이 좋아 최상품으로 친다. 방어회는 크게 등살, 뱃살, 배꼽살, 목살로 구분하는데 이렇게 부위별로 제대로 맛보려면 대방어 크기가 돼야 한다. 방어에는 DHA, EPA 같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비타민 D도 풍부해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 등 순환기계 질환은 물론 골다공증과 노화 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자연산 방어를 선호했으나 최근 양식 방어는 지방이 잘 올라오도록 영양을 고려한 사료를 먹이면서 키우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아 자연산만큼 맛이 좋고 기생충이 없어 유통량이 크게 느는 추세다.
부시리와 ′히라스(ヒラス)′는 같은 물고기인데 겉보기와 맛이 방어와 비슷하여 흔히 방어로 착각할 수 있다. 방어는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의 끝 선이 일치하는 데 비해 부시리는 어긋나 있다. 방어는 윗턱 모서리가 직각으로 갓이 있고, 부시리는 모서리가 약간 둥글다. 그리고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연한 선 색깔이 진하면 부시리, 연하면 방어라고 보면 된다. 회를 뜨면 방어는 붉은빛이 많이 돌고, 부시리는 흰색을 많이 띤다. 부시리는 따뜻한 수온을 좋아하는 아열대성 어류로 수온이 상승하는 늦봄부터 가을 사이에 남해안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살을 찌우는 반면, 방어는 산란을 마치고 여름철에는 지방이 빠지고 살이 적어 맛이 없다. 그래서 ″겨울엔 방어, 여름엔 부시리″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요즘 방어가 제주 바다에서 잘 잡히지 않고 있다. 제주도 특산 어종인 자리돔이 동해상에 머물면서 이를 먹이로 하는 방어 역시 제주로 내려오는 어군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수온 상승과 관계가 깊다. 온대성 어류인 방어는 수온과 먹이를 따라 여름철에는 동해까지 이동했다가 10월이 되면 14도 안팎의 따뜻한 수온이 유지되는 제주도 부근 해역으로 다시 내려오는데 최근 수온 상승으로 방어 떼가 동해안에 머물면서 제주해역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까지만 해도 방어는 어획량이 적어 집계조차 되지 않는 소수 어종이었다. 그러다 어획량이 점차 늘면서 2023년에는 무려 4천 톤을 넘어서서 동해안에서 오징어를 제치고 최고 어획량을 기록한 대세 어종이 되었다. 겨울철이면 오징어, 도루묵, 양미리로 풍성했던 동해안 어항에서는 이들 어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그 빈자리를 방어가 채우고 있다. 이렇게 방어의 겨울 여행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지역 어민은 물론 지자체 간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바야흐로 방어의 계절이 왔다. 참치도 울고 갈 그 맛, 겨울 별미의 끝판왕 방어회는 쫄깃한 식감에 씹을수록 고소하다. 기름기가 올라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방어회 한 점으로 우리의 겨울 바다 정취를 입안에서 느껴보면 어떨까?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前 한국생선회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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