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 나락

이봉수



한국어가 얼마나 다양한 표현을 갖고 있는지 가을 들판의 나락을 보면 알 수 있다. 저 나락이 초봄에 모판에 뿌려질 때는 씨나락이라고 한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도 있다. 씨나락이 발아되어 한 뼘 정도 자라면 모가 되어 모내기를 한다.

모가 한참 자라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벼라고 하다가, 가을이 되면 나락이라고 부른다. 찹쌀이 나오는 나락은 찬나락이다. 나락이 익으면 추수를 하고 탈곡한 나락을 멍석이나 마당에 말린다. 이때는 우케라고 한다.

갓 추수한 나락을 삶아서 껍질을 벗긴 것이 찐쌀이다. 그해 첫 추수를 한 나락을 방아를 찧어 쌀로 만든 것은 햅쌀이다. 쌀은 밥솥에서 밥이 되고, 솥 바닥에 눌러붙은 것은 누룽지가 되어 숭늉을 끓여 마실 수 있다.

씨나락, 모, 벼, 나락, 우케, 찐쌀, 햅쌀, 밥, 누룽지, 현미, 칠분도 쌀, 정부미 등 나락 하나가 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어가 얼마나 섬세한 언어인지 알 수 있다. 영어에서는 이 모두를 통틀어 라이스(rice)라는 단어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면서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시절에, 강력한 태풍 링링이 오늘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한다고 한다. 구역질 나는 위선자들을 쓸고 가버렸으면 좋겠지만, 죄 없는 들판의 나락만 다칠까봐 걱정이다.




이봉수 기자
작성 2019.09.07 10:18 수정 2019.09.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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