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여자애들이 주로 했지만 남자애들도 가끔 함께 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꿉장난 또는 소꼽장난이라고도 하는 소꿉놀이는 요즘처럼 장난감이나 게임기 등이 없었던 시절에 아이들이 했던 아날로그 놀이였다.
아이들은 담벼락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를 했다. 반듯한 돌을 주워다 펼쳐놓고 여러 개의 조가비에 흙을 담아 밥을 차리고 진달래꽃이나 찔레순을 꺾어 반찬을 차렸다. 엄마와 아빠가 정해지면 아들, 딸, 언니, 동생도 차례로 정해져서 각자 맡은 역할연기를 했다.
오지랖이 넓은 기집애가 엄마 역할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남자아이에게 아빠를 하라고 하면 남자 자식은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이때 아이들은 "중아 중아 고깔 중아 찔레 꺾어 밥해 먹고 배미 잡아 반찬해라"는 동요를 불러댔다. 탁발 나온 스님이 이 노래를 들으면 빙긋이 웃기만 할 뿐 애들을 혼내지는 않았다. 배고팠던 시절에 얼마나 밥이 그리웠으면 아이들이 이렇게 놀았을까.
소꿉놀이는 서울 애들의 말이고 경상도에서는 '반도깨미' 또는 '반주깨미'라고 했다. 동무들에게 "우리 반도깨미 살자"라고 하면 서울말로는 "우리 소꿉놀이하자"는 뜻이다. 여기서 '살자'라고 한 것은 어른들처럼 살림을 살자는 말이다. 반도깨미 살림을 차려놓고 어른들 흉내를 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나 보다.
세파에 찌든 어른들은 허황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애들 반도깨미 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나무랐다. 장난기 섞인 농담이긴 해도 어른들의 때묻은 무지가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반도깨미 살림을 폄하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고 동심이 천심이 아니던가. 성경에서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가난했던 시절 순수한 동심으로 함께 반도깨미 살림을 살았던 동무들이 무척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돌아보니 인생은 한갓 반도깨미 살림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