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자기반성과 성찰의 문학

신기용

문학의 구실은 ‘자아 성찰’, ‘자아 발견’, ‘자아실현’ 따위의 용어와 맞닿아 있다. 이를 자기반성과 성찰이라고 요약하여 말할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을 비롯한 여러 문인은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인간 구원’이라고 한다.

 

문학의 구실이든 궁극적인 목적이든 ‘인간 구원’의 기능, 즉 종교적인 기능으로도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윤동주, 이상, 서정주 시인이 그려 낸 자화상에서도 자기반성과 성찰의 기능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수면(水面)과 거울을 객관적 상관물 혹은 시적 모티프로 끌어들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전문

 

인용 시는 6연으로 구성한 산문체 자유시이다. 즉, 산문시이다. 이미지는 우물 속의 자화상이다. 수면(水面)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매개체이다. 주제는 자기반성과 성찰이다. 즉,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연민이다. 1~2연에서 산모퉁이 외딴 논가에 있는 우물에 가서 들여다본다. 우물 속 밝은 달과 구름과 하늘이 있고, 파아란 바람이 분다. 3~5연에서 우물 속에 한 사내(화자의 그림자)가 있고, 그 사내가 미워져 돌아섰다가, 돌아가다 생각하니 가엾어 다시 돌아가 들여다본다. 다시 미워져 돌아가지만, 이내 그립다. 6연에서 2연의 자연적 상황(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이 펼쳐진 이미지 위에 추억처럼 한 사내가 있다. 우물은 과거의 추억 공간이면서 그리움의 정서가 스며 있는 공간이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

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 「거울」 전문

 

인용 시의 주제는 지식인의 분열된 자의식이다. 이에 한정하여 읽을 수도 없다. 달리 여러 해석을 낳을 수도 있다. 이미지는 대칭 구조이다. 이상의 시와 소설은 대칭 구조가 주를 이룬다. 건축학도의 대칭 사고가 드러난다. 의미적 대칭(상승/하강, 상승/몰락), 도상적 대칭(지하/옥상), 시 구조의 대칭(수미상관법)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이상의 「거울」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이다. 가장 완성도 높은 시이다. 희극적 아이러니 기법 때문이다. 거울의 속성은 마주볼 수는 있으나 소리가 없고, 악수도 할 수 없다. 1, 2연은 거울 세계의 청각에 대한 묘사이다. 2연에서 청각적 이미지 묘사를 더 강화한다. 3연은 거울 속 세계와의 단절 혹은 대립 강화이다. 4연 1행 거울은 차단적 분리자 속성을 드러낸다. 2행은 거울의 연결자, 접촉 매개자의 속성을 드러낸다. 5연에서 거울이 없는 공간의 전이(반전)와 절대 존재자로서 거울을 묘사한다. 6연은 거울 때문에 두 자아가 합일할 수 없음을 말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 전문

 

인용 시를 발표 당시의 표기 그대로 읽어 본다. 제재는 자화상이다. 실제 서정주의 부친은 마름이었다. 종의 아들로서 가난 속 힘든 삶을 살아왔음을 진술한다. 주제는 과거 삶에 대한 성찰과 초극의 의지이다. 회고적 시점의 시이다. 서정주에 관한 평가는 생명주의(생명파) 창시자의 업적이 있다. 반면 친일 행위와 군사독재 찬양의 과오가 있다.

 

이와 같은 자화상을 그려 낸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시적 화자는 자기 자신과 심미적 거리를 둔다. 그리고 생각한다.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일은 대자적이다. 스스로 즉자적 존재임을 거부하고, 대자적 존재임을 표현한다. 시적 화자(주체)와 타자라는 대자 존재를 말한다. 여기서 물이나 거울에 비친 얼굴은 타자이다. 타자란 나의 대타 존재이다.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는 칼 융(C.G.Jung)이 제안한 개념인 그림자 원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림자 원형이란 인간의 내부적 열등 기능이 개인의 삶에 개입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어두운 면을 투사한다. 이때 인간은 혼돈을 경험한다. 무의식의 다른 측면은 수많은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의 어두운 측면을 더 깊이 탐색하려고 한다. 자신의 그림자와 심미적 거리를 두고 자아를 발견해 나간다. 

 

또한, 헤겔의 ‘즉자—대자적—존재’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심미적 거리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성찰하게 하여 ‘대자적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이를 시인은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실천적 삶을 지향한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자아도취에 빠져 사는 사람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다양성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자아도취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를 읽고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늘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1.08 10:13 수정 2025.01.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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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