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탈출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는 유목민들의 삶으로부터 나를 발견하기 위해 몽골로 향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 교감하는 샤머니즘이 있고, 인도 불교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티베트 불교의 전통이 남아 있는 몽골은 매혹적인 겨울 여행지다. 몽골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울란바토르 징기스칸 공항에 내리니 영하 30도의 혹한이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 울란바토르 시내를 지나는데 교통체증이 보통이 아니었다.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도 상상을 초월했다. 런던스모그를 연상케 하는 대기오염이 여기 광활한 초원의 나라에도 있을 줄이야. 2차대전 승리의 상징물이자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에 오르니 독한 연탄가스 너머로 해가 저물었다. 그 아래 우뚝 서있는 16미터 높이의 불상이 빨리 시내를 벗어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숨막히는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면서 허르헉이라는 양고기 요리로 요기를 했다.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국립공원 입구의 글라스 빌 캠프에 있는 몽골 전통가옥 게르에 여장을 풀고 나서야 맑은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순간 늑대도 이긴다는 몽골 개 방카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에서 온 이방인에게 인사를 했다. 긴 털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달고도 추운 내색을 하지 않는 순한 검둥개가 대견해 보였다.

전통 게르는 자작나무나 가문비나무 장작으로 난로를 피우는데, 여기는 전기난로를 땐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밤중에 한동안 전기가 나가버려 동태 신세가 될 뻔했다. 옷을 껴입고 장갑까지 끼고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앉아 있으니 새벽에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문밖에서 컹컹대며 짖어대는 방카르 때문에 선잠을 깨니 눈부신 설원에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아침 식사 후 테를지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아리야발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거북바위 주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을 보니 이곳의 지세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지나니 아리야발사원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에서 온 순례자를 반겼다.

사원으로 들어서니 산책로를 따라 불교의 가르침을 새겨 놓은 144개의 나무 입간판이 늘어서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 세파에 찌든 영혼을 쉬게 할 수 있다. 순례객들은 경전이 들어있는 윤장대인 마니차를 돌리기도 하고 도량을 지키는 지신상과 석가모니불 탱화에 경배를 하기도 했다.
사원 경내에는 소들이 눈 속에 파묻힌 건초를 뜯으며 큰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경전을 새긴 오색 타르초가 내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이 소들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아리야발사원의 수행자가 되라고 빌었다. 그 순간 눈이 큰 소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몸을 비비면서 인사를 했다. 소는 순한 짐승이고 영물이다.
피안으로 가는 출렁다리를 건너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108 계단을 오르니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푸른 하늘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종을 세 번 울린 후에 경배하고 나와서 전각을 한 바퀴 두른 마니차를 돌리면서 일체중생의 행복을 빌었다.

새벽사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아리야발사원은 1810년대에 몽골과 티베트 예술가들이 지은 절이다. 사원의 모양이 코끼리의 형상을 닮았으며, 전각으로 올라가는 108계단은 코끼리의 코를 닮았다. 2000년 이후 울란바토르에 있는 라미란(Lamiran) 사원의 불교 승려들이 이 사원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04-2007년에 복원 작업을 완료했다.
아리야발사원의 본전(本殿)에서 왼쪽으로 약 50미터 올라가니 작은 토굴에는 좌탈입망한 수행자의 석상이 있었다. 토굴 속에는 넓직한 돌에 부처님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고,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과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 그리고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수보살인 바즈라파니를 모셔 놓았다. 토굴 속에 감도는 신비한 에너지에 전율을 느끼며 한참 동안 서있었다.

몽골어인 '아리야발'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발로키테스바라'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의 고통을 모두 헤아려 구제한다는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아리야발사원 뒤쪽의 거대한 암벽에 티베트어로 '옴마니반메훔'이라는 관세음보살 육자진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은 금강승 바즈라야나 불교의 관음성지임이 틀림없다.
아리야발사원은 티베트불교 칼라차크라 전통의 절이다. 칼라차크라는 '시간의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윤회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밀교 수행 체계이다. 때로는 4개의 얼굴과 24개의 손을 가진 밀교의 수호신 또는 본존을 의미하기도 한다.
용수보살로부터 시작된 중관학과 공 사상, 연기법을 기반으로 하는 대승불교가 티베트에서 마지막 꽃을 피운 금강승 밀교의 무상요가 수행체계가 칼라차크라다. 달라이라마 존자가 대중을 상대로 칼라차크라 관정 법회를 여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몽골은 칼라차크라의 성지이며 아리야발사원도 그 중의 하나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