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에 '조선'이라는 접두사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다. 예를 들면 '조선옷'이 그런 경우다. 조선이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조선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고조선부터 시작되었고 근세조선에 이어 북한은 아직도 조선이라고 한다. 조선이 망한 후 남한은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아직도 조선과 관련한 단어를 습관적으로 쓰는 어르신들이 많다.
조선옷은 한복을 말하는데 양복과 비교되는 말이다. 아이들이 입는 색동저고리 때때옷부터 어른들의 무명 바지저고리, 모시 적삼, 삼베 등지게, 광목 두루마기, 연분홍 치마 등이 조선옷이다. 양복이 실용적이긴 해도 그 아름다움과 편안함은 조선옷을 따라올 수 없다.
조선간장은 왜간장에 대응하는 말이다. 메주를 띄워서 만드는 조선간장은 왜간장에 비해 깊은 맛이 난다. 요즘은 왜간장이 진화하여 몽고간장, 샘표 간장, 진간장 등으로 발전했지만 아직도 전통 조선간장을 고집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조물조물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일 때는 역시 조선간장이라고 한다.
낫도 조선낫이 있고 왜낫이 있다. 조선낫은 성냥간에서 쇠를 불에 달구어 모루 위에 올려놓고 단조 방식으로 해머와 망치로 두들겨서 만든다. 약 50년 전만 해도 이런 조선낫을 만드는 성냥간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봄이면 성냥쟁이가 와서 온갖 농기구의 성냥을 해주고 가을에 와서 대금으로 수확한 나락을 받아 갔다.
반면에 왜낫은 공장에서 캐스팅으로 찍어낸 낫이다. 조선낫에 비해 날이 가늘고 무게가 가볍다. 처음에 한두 번 쓸 때는 조선낫에 비해 잘 들지만 조금 지나면 우직한 조선낫에 비할 바가 못된다. 숫돌에 갈면 갈수록 더 잘 드는 것이 조선 낫이기에 농부들은 왜낫보다 조선낫을 좋아했다.
무우를 경상도에서는 무시라고 한다. 무시도 조선무시가 있고 왜무시가 있다. 토종 조선무시는 굵고 맛이 시원하다. 반면에 왜무시는 가늘고 길쭉하면서 약간 매운맛이 난다. 단위 경작 면적당 수확량은 왜무시가 많지만 사람들은 조선무시를 좋아했다. 겨울이면 조선무시를 땅속에 묻어놓고 긴긴 겨울밤에 간식으로 깎아 먹기도 했다.
파도 양파가 있고 조선파가 있다. 조선파는 쪽파 또는 골파라고도 하며 일본말로 '다마네기'라고 하는 양파와 대비된다. 겨울철에 진도에서 많이 나오는 대파도 조선파와는 다른 종이다. 조선파는 용도가 다양하다. 살짝 데쳐서 파나물로 무쳐 먹으면 맛이 매콤 달콤하다. 배추김치 속에 조선파를 잘게 썰어 넣고, 동치미에는 조선파를 잘 다듬어 통째로 넣기도 한다. 양파나 대파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감칠맛 나는 파가 조선파다.
죽장에 삿갓 쓰고 조선 천지 팔도강산을 유랑했던 김삿갓은 조선옷을 입고 조선술을 마시면서 떠돌았다. 조선 농부들이 조선낫으로 가꾼 조선무시 김치나 조선파 나물이 안주였을 것이다. 안주가 없을 때는 소금이나 조선간장을 안주로 했다. 그 시절 김삿갓은 조선간장을 '지렁'이라고 했다. 김삿갓도 가고 조선은 망했어도 우리말 속에는 여전히 아련한 추억으로 조선이 남아 있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