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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모를 쓴 와룡동 은자 (69)
느릿느릿 기울어 가는 그믐달 아래
늙은 고양이처럼 걸어오는 봄비가
작고 쓸쓸한 서재의 창문 앞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거친 질문을 하네
“미인과 진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이 불안한 질문에 일어나는 지독한 현기증
비겁한 겁쟁이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지
평생 어리석음을 먹고 산 와룡동 은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안다는 건 슬프지만
그나마 하던 걸 하는 게 제일 쉬운 법이지
사랑에 빠져 있을 땐 홀로 있고 싶고
홀로 있고 싶을 땐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신에게서 재빨리 도망쳐야 승리자라네
과거의 진리를 유지해 주던 알고리즘과
미래의 미인을 말살하려는 알고리즘 사이에서
공통점이라는 끔찍한 속임수만 존재한다네
“그러니 미인과 진리를 만나거든 친절해야 한다네
그들은 이미 전쟁 중이고 또 전쟁 중일 테니까”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