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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상자를 맨 남자 (67)
갈 곳 잃은 도시 유목민들이
종로 뒷골목 싸구려 음식점에 앉아
흔해 빠진 문화 막시즘에 취해
가난을 소비하며 즐거워할 때
어디선가 다정한 그 목소리 들리네
“찹쌀~떡, 망개~떡”
그 옛날 동네 골목을 울리던 찹쌀떡 소리
전설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건만
나무상자를 매고 들어오는 그 남자
초승달처럼 웃는 눈가에 앉아 있는 세월
그 남자도 늙고 나도 늙고 골목도 늙었는데
닳고 닳아 반질반질한 나무상자 속에
찹쌀떡 망개떡이 가지런히 누워있네
빛나는 정장 입고 누비던 종로 뒷골목
벗어버린 속박의 자유를 누리며 다시 찾아
떠들썩한 농담으로 늙음을 위로받는데
변두리 어딘가 올렸다는 빌딩 주인 그 남자
찹쌀떡 망개떡 모시고 온 나무상자를 열어
허기진 유목민들의 배속으로 방생하네
“그 남자의 추억 비즈니스에 경배를”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