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시대의 10구체 향가로, 충담사가 경덕왕에게 지어 바쳤다고 전해지는 ‘안민가’에는 “아으 군답게 신답게 민답게 할지면 / 나라 안이 태평하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안민가’의 결론 부분으로 당대 혼란스러웠던 신라의 상황을 작품의 1-3구 “군(君)은 아버지요 / 신(臣)은 사랑하실 어머니요 / 민(民)은 어린아이로고 하살지면”과 연결 지어 해석하면, 작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안민가에서 중시하는 가치는 각자의 본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이다. 물론 사회구성원의 생활양식 및 가치관이 다양해진 현대사회의 개인들을 하나의 분류로 묶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라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최근 보이는 경향성인 ‘다원화'라는 미명 아래 개개인의 선택권까지 제한하는 모습은 다소 우려스럽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는 다원화의 개념이 타인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 사례를 예로 들면 “남자는 운동을 하고 여자는 무용을 한다.”라는 일반적 경향성으로 모든 남자와 여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다. 무용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 수 있고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다.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기본가치는 다양성과 개개인의 적성과 개성의 발현이기에 무용하는 남자, 운동하는 남자, 무용하는 여자, 운동하는 여자 모두 차별 없이 대우받고 각자의 선택은 권장 받아야 한다.
다만 일부 극단적인 모습의 발현으로 한 개인이 기존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선택을 했을 경우 이를 비난하는 행동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지양해야한다. 특정개인이 기존의 틀을 따랐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는 행위는, 다원성의 개념에 대한 오역이며 “xx는 xx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새로운 고정관념의 부여이다. 모습만 다를 뿐 그들이 다양성과 개성발현을 추구하며 지양하고자 했었던 구조주의적 접근을 답습하는 모습에 불과하다.
또한 아무리 다원화된 사회라 할지라도 한 지위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준거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학교를 예로 들면, 학교 안에서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각각의 지위는 사회를 구성하는 역할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역할 속에서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개성발현은 지향되어야하나, 지나치게 다양성을 강조하며 기본적인 역할 및 사회적 통념의 부정까지 극단적으로 뻗어나가는 현상은 지양해야 한다.
다원화와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은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고 자신의 권리가 존중받는 만큼 타인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한 개인이 아무리 남과 다르고 뛰어난 관점을 가졌다고 자부할지라도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비난할 권리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 및 가치관이 옳다고 존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선택 및 가치관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양동규 기자 dkei82.nar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