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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65)
여전히 희망은 부족하고 고통은 넘치는데
관념으로 뭉친 저 너머의 세계가 끝나가고
노련하고 섬세한 감각의 세계가 몰려오네
견뎌야 할 고요의 위험이 많은 미탄에서
나는 동강할미꽃처럼 벌거숭이로 서 있다네
서울에서 둘러메고 온 고독을 부려놓고 나니
재치산 넘어 별들이 우르르 속절없이 내려와
저들끼리 한바탕 춤추며 나를 축복해 주네
손바닥만 한 몇 평 땅뙈기 위에 농막 하나
내가 나를 아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자두가 열리면 벌들과 개미들 불러 잔치하고
참외가 익어가면 달님이 내려와 속삭이고
대추가 열리면 바람이 몰려와 추수하고
새록새록 눈이 내려면 나는 고독에 겨워
미탄의 불꽃처럼 위험한 고요를 즐긴다네
부서지기 쉬운 삶의 의미도 버려 버리고
평등에 대한 욕망도 사라져 버리고 나니
보이는 건 방치되어 있는 미탄의 자연뿐
흐르다가 숨고 숨다가 다시 흐르는 동강에서
나는 지루하고 더디 가는 인생을 찬미한다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