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충무공 이순신 탄신 4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순신 사후, 그의 이름은 언제나 충忠의 상징으로 기능했지만 이러한 사실이 올해만큼 극적인 해도 드물 것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가 늘 우선이었던 이순신도 선조실록이 편찬되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국난을 극복한 많은 공신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정조 때에 이르러 비로소 제대로 조명되기 시작한 데에는 당시의 권력관계에서 '이순신'이 지닌 효용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라를 반석에 세우고자 했던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계엄 탄핵 정국에서도 '이순신'은 어김없이 독재에 저항하는 칼과 방패가 되었다. 이는 그간의 순수한 영웅주의와도 차별화된, 개개인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추동한 시대의 힘으로 이순신을 주목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이순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무리 또한 적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12척의 배'를 상기시키며 자신들의 처지를 임란 당시의 백성들과 이순신에 빗대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순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박해받는 수난자로 여기는 심각한 인지장애를 겪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들의 무지와는 상관없이 누구보다 "침략자 일본을 엄중히 비판하되, 엄혹한 전쟁 중에도 무서운 현실주의로 질주한 조선의 지배층이야말로 이 동란의 근원이라고 더욱 엄중히 견책"했던 이였다. 이순신이란 이름은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그들의 입에서 나올 이름이 아니다.
부산여해재단을 만든 김종대 전 헌법 재판관은 '세월호'를 겪으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사회가 겪는 총체적인 난국상이 제대로 된 지도자의 부재로 폭발했던 사건이 '세월호'였기에 평생 공직자 신분으로 살아온 그에게 세월호가 어떤 의미였을지 충분히 짐작되는 바였다. 나 또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직무능력도, 도덕적 책임감도 없는, 이를테면 가라앉는 배에서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일보다 속옷 차림으로 혼자서라도 도망치는 행위가 더 우선인 이런 자들이 우리사회에는 리더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많이, 독버섯처럼 퍼져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 대단한 지도자의 도래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는 더는 건강하지 않다. 지금의 시대가 그것이 가능한 구조도 아니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각각의 식견과 안목을 갖춘 다수의 시민들이 우리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 그들이 '더' 중요해졌다.
최근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많은 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계엄 이후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가 이 산불로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광범위한 피해와 턱없이 부족한 지원으로 탄식이 끊이지 않는 재해 현장에도 어김없이 '작은 이순신'들은 있었다.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자들 사이에서 이들은 변함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통해 큰 위안을 받았다. 아마도 그 옛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서도 분연히 일어난 민중들과, 그들의 운명을 껴안았던 이순신이 우주 너머 저 어디쯤에선가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다시 마음이 추슬러졌다. 어쨌든, 우리는 해 내었고 계속 해 낼 것이다. 우리는 이순신의 후예들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kind=small}
){kind=small}
){kind=small}
){kind=sm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