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칼럼] 우리는 왜 의대에 열광하는가

이영준

한 이공계 교수의 한탄 섞인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천문학과 학생 수가 열 손가락을 채우기조차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별을 좋아하던 아이가, 정작 별을 보는 대신 현실적인 진로를 택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이해가 된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꿈을 실현하거나 깊이 있는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 해를 투자하는 등록금과 시간, 그리고 졸업 후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오직 세상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고, 그런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길을 택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대별로 천재라 불릴 만한 우수한 영재들은 꾸준히 태어나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선택한다.

 

과거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호모 에렉투스 시대부터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사용했다. 이후 문명은 급격히 퀀텀 점프하며 발전했다. 수의 비밀이 밝혀지고, 수많은 수학자들이 그 구조를 벗겨내며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이공계는 인류 문명의 가속기를 자처해 왔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 또한 이공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문명을 이룬 이래, 과학은 언제나 그 성숙을 이끌어 왔고, 인류는 과학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 왔다. 오늘날의 문명은 우리를 행성 밖으로 보낼 준비까지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집중하는 힘과 역량의 원천 역시 과학기술이다.

 

로켓 기술 등 합리적인 과학기술은 군사적 무기로도 전용된다. 그런데 천문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이 생계 걱정을 하고, 원자력 기술을 보유한 이공계 인재들이 평범한 공무원 급여를 받고 있다. 특수 기술을 가진 이들에게 급여를 높일 수 없다면, 연구비와 성과급을 충분히 지원해 독려해야 마땅하다. 그런 지원이 부족하니, 오히려 연구비에 손을 대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현실과 타협하며 안주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니, 인재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실도 속 터지는 일이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이공계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주택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를 공론화하고 연구비를 모금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천재들을 국가와 국민이 함께 키우는 구조다.

 

한 나라가 문명을 이루고, 이웃 나라의 문명을 흡수할 때는 언제나 강한 군대가 있었다. 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바다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미국은 그렇게 연결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시대, 배 한 척을 몰고 그렇게 떠난 것이다.

 

지금은 대우주시대다. 달에 먼저 가서 자원을 채굴하고, 다른 땅을 먼저 점령하는 국가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늘 새로운 땅을 선점한 나라들이 부국강병을 이뤘다. 18세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19세기는 대영제국, 20세기는 미국이 그랬다.

 

오늘날은 명분 없는 전쟁이 허용되지 않는 평화의 시대지만, 미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으로 달 탐사를 추진 중이고, 중국도 2007년 창이 1호 발사를 시작으로 창이 6호까지 달 탐사를 이어가고 있다. 무인 로버까지 착륙시켰다. 그들은 미지의 땅을 차곡차곡 선점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아직 무인탐사는커녕 유인탐사도 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이 달에 가는 탐사선에 우리나라에게 승선권을 제안한 일이 있었다. 요구한 비용은 100억 원. 하지만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다. 한편, 대전의 신세계백화점 앞에 설치한 달 조명에는 70억 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이공계 교수들이 한탄할 만하다. 나 역시 한탄스럽다.

 

2차전지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이미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핵융합 기술에 필요한 헬륨-3 역시 달에 가야 확보할 수 있다. 자원은 먼저 확보한 자가 임자다. 사람들은 점점 아이를 낳지 않고,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팔 수 있는 자원도 없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기술력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돈을 쓸 줄 모르고, 투자할 줄도 모른다. 당장 눈앞에 보기 좋은 달 조명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십 수 년 전, 국가 예산 260억 원을 들여 우주정거장에 11일간 머무른 후 스스로 ‘우주인’이라 불렀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의무복무 2년 반을 채운 뒤, 항공우주 분야와는 무관한 경영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났다. 이공계에 대한 희망의 싹이 그때 잘려 나간 것 아닐까? 결국 우리는 세금으로 그에게 우주 관람차를 태워준 셈이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우주 소식은 뜸해졌다. 물론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다양한 채널을 운영하며 일반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 채널과 관련 도서도 늘어났다. 이런 흐름이 나비효과가 되어, 기적을 만드는 지렛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늘 응원하고 지지한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다.

 

도대체 그놈의 의대가 뭐길래, 과학고에 진학했던 아이들마저 결국 의대로 빠진다. 과학고는 어느새 의대 진학을 위한 길목이 돼버렸다. 이해는 간다.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의사만큼 대우받지 못하니 말이다. 과학고는 기술인을 키우기 위한 명목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제반 조건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창의적 천재들이 결국 의사가 되어, 창의력을 다른 방향에서 불태우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의사가 얼마나 힘든 공부를 하는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중대한 직업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의사는 일정한 노력을 기울이면, 정해진 매뉴얼을 익히고 따라가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구하는 천재들—인간의 몸보다 지구 밖의 우주를 연구하고 싶었던 이들—이 단지 현실적인 이유로 진로를 포기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출산율은 이미 0.77이다. 아마 더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과연 스스로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가. 어른들은 이 모든 전후 사정을 고려해, 아이들의 진로 설계를 제대로 돕고 있는가. 지금처럼 인구가 줄어들다 보면, 머지않아 의사들이 자동차 정비사 같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이미 AI 진료 사례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의 의사는 지금 같은 대우를 얼마나 더 오래 누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우리는 기술과 연구개발로 나라를 세워 온 민족이다. 그런데 그 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한강의 기적은 이미 끝났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기적을 바랄 수는 없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이룬 기반 위에서 다음 세대가 살아가려면,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필수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대가 만들어 놓은 원천기술에 기대 살아왔다. 건설, 자동차, 반도체, 전자기술—여기까지가 끝이다. 모든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고, 양자역학이 아닌 게 없는 시대다. 이제 미래를 향한 키를 어느 방향으로 돌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가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국가가 마땅히 해줘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인류가 불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이 세상 모든 것은 과학으로 이루어졌다. 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수로와 농경, 문명과 생활—과학이 빠지지 않은 분야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학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국민의 과학 이해력, 국가의 과학 정책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실질적인 투자가 함께 병행되길 바란다.

 

국가가 인재를 홀대하면, 인재도 국가를 홀대한다.

 

 

[이영준]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무에타이, 킥복싱 선수 생활

백수건달CEO 유튜브 운영

이메일 wushu0829@naver.com

 

작성 2025.04.24 10:05 수정 2025.04.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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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