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법전의 아버지 ‘함무라비’

전명희

나는 삼천팔백삼십여년 전 인간 ‘함무라비’다. 아름다운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을 가진 도시국가 바빌론에서 태어났다. 바빌로니아의 5대 왕인 아버지 신무발리트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나는 궁중의 왕자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쐐기문자를 익히기 위해 점토판에 기록하는 법을 배우고 사법 체계와 신전행정을 배웠으며 세금제도에 대한 교육도 열심히 배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신화를 익혔고 점성술도 배웠다. 또한 제의에 대한 지식도 빠짐없이 배웠다. 전략과 전술, 병사 지휘 같은 전쟁에 대한 교육도 배웠다.

 

나는 왕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 신무발리트의 통치 과정을 지켜보며 어떻게 해야 우리 바빌로니아를 잘 다스려서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을지 실무교육을 철저하게 배워 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안심했고 자랑스러워했다. 종종 지방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달려가서 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공정하고 평등하게 그 분쟁을 해결해 내는 능력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통치자로의 자질과 지도력을 키워가며 왕이 되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발판을 다져 나갔다. 

 

바빌로니아 왕은 신의 대리인이다. 왕자인 나도 단순한 왕족이 아니라 ‘신의 뜻을 이을 자’이기에, 태양신 샤마시와 지혜의 신 엔키 등을 섬기며 종교적으로 상징적인 권위를 교육받았다. 문자, 법률, 종교, 정치, 군사 등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위대한 바빌로니아의 왕이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사회 혼란 속에서 내적으로 단단하게 훈련받아 정치 실습과 행정 경험을 쌓고 왕위 계승 준비를 완벽하게 하였으며 국민과 왕정으로부터 정통성과 신성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아버지 신무발리트는 바빌론의 세력을 주변 도시국가들로 확장해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늙고 병약해지면서 정치적 판단력이 흐려지고 통치 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었다. 아버지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점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나에게 왕위를 양위해 주었다. 나는 왕위 계승자로의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기에 자연스럽게 권력을 이양받았다. 국민들은 자랑스럽게 나를 왕으로 인정했고 신하들과 귀족들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18살에 왕이 되었다. 

 

나는 신들의 뜻을 받은 왕임을 온 세상에 천명했다. 정의의 신 ‘샤마시’로부터 통치 권한을 받았으므로 종교적 정통성과 신성한 권위를 갖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을 맹세했다. 내가 통치를 하면서 세상은 평화로웠다. 나는 우선 아시리아 제국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면서 라르사의 림신왕과 우호 관계를 맺고 평화를 이어나갔다. 주변국들도 내 정치력을 높이 평가하고 전쟁을 자제해 왔다. 우리는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에 문화를 창출해 내는 힘이 있었다.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발전된 문화로 국민들의 생활은 날로 향상되고 있었다. 나의 정치력과 지도력은 빛을 발하고 국민들은 나를 신봉했다.

 

평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삼시 아다드가 죽자 북쪽의 왕국들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우리 바빌로니아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때를 이용해 성벽을 높게 쌓고 새로 신전을 건설하는 등 공공사업을 펼쳤다. 세금 제도를 고치고 치안을 강화했으며 농업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등 국가 내부 구조를 정비했다. 특히 관료제와 기록 체계를 강화하여 지방 통치를 효율적으로 했고 법전제정의 기초를 다져놨다.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 공정한 재판과 신중한 법 집행에 힘쓰며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밑바탕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면서 큰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군사력을 재편성하고 방어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외교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군사적 동맹을 모색하여 장기적인 정복 전략을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5년 뒤에 남쪽으로 진격해 라르사로부터 이신을 빼앗고, 우루크와 우르까지 점령했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진격해 티그리스강을 건너 야무트발에서 전투를 벌였고, 2년 후에는 그 지역의 관문 도시인 말굼을 점령했다. 몇 년 후 서쪽으로 진격해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라피쿰을 점령했다. 나는 짐리림과 동맹을 맺어 마리와 알레포 군대의 도움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히리툼에서 엘람인들을 무찔렀다.

 

나는 우룩, 이신, 라르사, 우르, 니푸르, 우마, 아다브, 시파르, 보르시파, 에리두, 라피쿰, 마리, 에슈눈나, 카즈알루, 마라드, 카르 샤마시를 등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외교와 동맹을 활용해 군사력 강화와 기습 공격으로 통합정책과 전략적 정복을 통해 지역적 정치적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다양한 도시국가들의 고유한 법과 관습은 통일되지 못했다. 나는 이제 모든 국민이 따를 수 있는 새로운 통일제국의 새로운 법과 법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정의의 수호자이자 신들의 대리인으로서 강자가 약자를 해치지 못하게 하고 억울한 자가 보호받게 하도록 법전을 만들었다. 형법은 보복의 원칙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군가를 살해하면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 등을 만들고 민법은 계약과 상속과 재산권에 관한 원칙인 “운하를 관리하지 않아 홍수를 일으킨 자는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등을 만들고 가사법은 “아내가 남편을 해치려 했다면, 물에 던져 넣는다.” 등을 만들었으며 노동과 경제법은 “집을 지은 건축가의 실수로 사람이 죽으면, 그 건축가의 아들을 죽인다.” 등을 만들고 법정절차법은 거짓 증언, 매수된 판결 등에 대한 처벌 규정하고 재판 기록 보존과 공정한 증인의 역할 강조하는 법을 만들었다. 

 

왕 위에 오른 지 사십 년이 되던 해부터 건강이 악화하여 아들 삼수일루나가 국정운영을 점차 맡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기력을 잃고 이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직감했다. 나는 제국통일을 이루었고 입법자로서 법률을 정했으며 정의의 수호자로서 법전을 만들었다. 나는 43년간의 바빌로니아 왕으로서의 통치를 마치고 육십 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5.05.12 09:51 수정 2025.05.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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