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Alhambra) 궁전의 추억
험준한 스페인의 산악지역
시에라네바다 산맥 북쪽에
‘석류’라는 뜻을 지닌 그라나다가 있다
그라나다 알바이신 언덕에 세워진
아름답고 그윽한 옛 성, 알함브라 궁전은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오리엔트산 진주
파란 하늘에 흰 구름
상쾌한 산속 공기 머금고
흥망성쇠 역사를 품 안에 간직한 채
알바이신 구릉 위에 태양처럼 빛나고 있구나
섬세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라비아 서체
기하학적 무늬와 색채의 황홀함은
이곳이 천상 세계던가
알함브라 왕궁 정문을 들어서니
담쟁이덩굴 만발하고 꽃향기는 진동하네
물과 정원수가 어우러진 이슬람 정원
헤네랄리페(Generalife)
벨라탑에 서면
시에라네바다의
눈 덮인 연봉이 보이고
계곡 건너편에는
사크로몬테 언덕의 집들이 하얀 띠를 이룬다
스페인에서 가장 로맨틱한 건축물인 나스르궁
파티오(中庭)를 중심으로
대리석, 타일, 채색 옻칠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장식의 방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국토를 회복한 카톨릭 정복자들은
이 궁 만큼은 너무 아름다워
궁전을 파괴할 수 없었다네
인도 타지마할의 모티브가 된
코마레스궁 ‘대사(大使)의 방’
패자인 보아브딜왕과 승자인 이사벨 여왕 사이에
그라나다를 양도하는 조인식이 열린 곳
8두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라이언궁
천장과 벽면이 아라베스크 문양의 극치인
‘두 자매의 방’
돔이 멋진
아벤세라헤스 방에는
끔찍한 사연이 전해온다
자신의 왕비가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남자와
밀통한 것을 알게 된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브외브딜
복수심에 불타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남자 36명을
이 방으로 초대한 후 모두 죽이는 바람에
이들이 흘린 피는
수로를 타고 파티오로 흘러가
분수대 8두의 사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질투에 눈이 멀어 저지른
한 인간의 잔인함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는 이사벨 여왕에 의해 결국 멸망하고
보아브딜 왕은 북아프리카로 떠난다
왕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기 전에
뒤돌아서 이 아름다운 궁을 다시 바라본다
햇빛에 빛나는 궁은 오늘따라
눈이 시릴 정도로 더욱 아름답다
홀로 오롯이 남게 된
궁의 애절한 모습을 바라보는
왕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흐른다
남의 땅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멋진 성을 쌓고 주인으로 살아왔던 800년
이제 기운이 다한
땅 위의 “붉은 성”은 석양에 물들어간다
달빛이 드리워진 알바이신 언덕의 극장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반주에 맞춰
플라멩고 춤을 추는 집시 여인
애잔한 분위기와 낭만적인 멜로디는
알함브라 궁전의 정서와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리는지
이베리아 반도 무어인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의 눈물은
자신이 사랑했던
라이온 궁의 분수대에서
오늘도 낙숫물 되어 떨어지고 있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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