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일요일 아침 7시에 들르던 빵집이 있습니다. 카페라떼를 사들고 학원에 가려고요. 학원시간표를 1년 단위로 짜다 보니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에 1년을 이용한 셈입니다.
어느 날, 빵집 사장님을 길에서 우연히 보고 얼떨결에 서로 인사해 버렸습니다. 한 번도 사적인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는 사인데.
빵집 주인이 바뀐 것 같아 궁금하던 차에 마주치니 저절로 눈이 켜져 버린 게지요. 사장님은 35년 운영하던 빵집을 정리했다며, 매주 일요일 주문하자마자 눈으로 재촉하던 저를 궁금해했습니다. 커피머신이 서툰 아르바이트생만 있을 때는 카페라떼를 내리러 일찍 출근했다는, 궁금했지만 바쁘게 돌아서는 저를 불러 세우지 않았던 직업정신이 있어 35년을 버틸 수 있었나 봅니다.
빵으로 애들 공부시키고 얼마 전 막내까지 살림을 내주니 홀가분하답니다. 놀 팔자는 못 돼,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따서 중개업을 시작한 지 한 달인데 일하는 게 신나고, 빵집 할 때보다 시간이 자유롭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니 좋다고 인생 60년을 단박에 풀어놓습니다. 그동안 보아온 사장님의 모습은 늘 굳게 다문 입과 굽은 어깨, 깡마른 몸이었는데 참으로 수다스럽습니다.
인생 1막은 성실과 근면으로 가족을 감당해야 할 의무로 살았다면, 2막은 맘먹은 대로 혹은 되어가는 대로 즐기고 있어서 몸의 소통이 원활하니 입을 닫을 새도 없나 봅니다. 과한 손동작에 웃음 섞인 말을 연신 쏟아내는 그가 건강하다 느껴집니다.
제 인생 2막은 치매 14년 차 엄마와 놀기입니다.
지난 일요일 키가 작아진 엄마의, 여름 바람막이 밑단을 줄이고 언니집 강아지 이불도 손보려고 미싱을 챙겨 갔습니다.
미싱을 들일 때는 옷도 만들 기세였지만 커튼 몇 개 만들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터라, 오래간만에 하려니 실 끼우는 거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뒷면에 실이 뭉치면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쪽가위로 엉킨 부분을 제거해 주고, 저는 박음질을 반복했지요. 맺고 풀고 맺기를 서너 번 둘은 말없이 집중했습니다.
공장일이 없는 일요일에 한복을 주문받아 만들 정도로 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틈틈이 옷을 만들어 주셨지요. 그때는 기대에 부풀어 제 옷이 되어가는 양을 지켜보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순박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간신히 삐뚤빼뚤 성공한 옷을 입어보시더니 양손을 추켜들고 들썩들썩,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엉거주춤 몇 발짝을 뗍니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나았네 에헤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자랑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던 저처럼.
엄마는 오늘도 행복한 기억 하나를 추가합니다. 달랑 옷기장 줄인 걸로.
독자님, 행복한 기억 하나 추가하기 좋은 오월입니다.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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