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최근 국회에서 추진 중인 ‘대법관 증원법’ 논의를 둘러싸고 사회 각계의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단독 처리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현행 14명인 대법관을 3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우리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숙의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속도전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사법부와 법조계의 우려
조희대 대법원장은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며, 대법원의 기능과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개편 방향에 대해 국회와 소통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법원 역시 “신중한 논의도 없이 법안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단기간에 대법관의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를 새로 임명할 경우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면, 전원합의체 운영의 어려움, 법령 해석의 통일성 약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훼손 등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증원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대법관 증원 논의의 배경에는 상고심 사건의 급증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연간 1만 건이던 상고심이 최근 4만~5만 건에 이르러, 대법관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이 과중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신속한 재판과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해 대법관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설문조사에서 54%의 판사가 증원에 찬성한 바 있다.
공론화와 숙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우선
그러나 대법관 증원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국민적 신뢰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공론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권 교체기에 맞춘 졸속 입법은 오히려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을 키우고, 국민적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의 독립성·중립성 보장, 대법원 다양성 확대, 전원합의체 운영 방식 개선 등 제도적 보완책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대법관 증원 논의는 사법개혁의 큰 틀 안에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맺음말
사법제도의 변화는 국가 백년대계와 직결된다. 대법관 증원 문제 역시 단기적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국민의 권리와 사법부의 본질적 역할을 지키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국회와 사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공론화의 장에서 충분한 논의와 숙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박동명 / 법학박사
∙ 한국공공정책학회 상임이사
∙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