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말한다. 어둠은 끝이라고. 하지만 이 책의 작가 김시유는 말한다. 어둠은 시작이라고.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을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 시작한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책 『어둠은 빛이 시작되는 곳이다』는 중독의 고통과 약의 부작용이라는 상처를 지나 삶을 다시 꿰매는 한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난 ‘말의 실타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아무도 보지 못한 자신만의 무너짐을 가만히 펼쳐놓는다. 그 조용한 붕괴 속에서 다시 감정을 회복해 가는, 인간적인 여정을 기록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자리다.”
루미의 이 문장은 작가가 이 책 전체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는 말의 핵심이다. 어둠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며 스며들고, 결국 나를 감추게 한다. 또한 작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나를 숨긴다. 괜찮은 척, 바쁜 척, 웃는 척.”
하지만 가면을 벗은 무대 뒤편, 텅 빈 조명 아래에 선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그는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책의 중심에는 ‘감정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서운 고통이었다”고 말하며, 다시 기쁨을, 분노를, 슬픔을, 사랑을 느끼고 싶다는 갈망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감정은 병원 진단서에 여러 가지 아픔으로 기록되어지지만, 사실은 삶을 이어가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증거라는 것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감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 절망 속에서도 다시 감정을 갈망하는 것! 그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고 적은 대목은, 독자의 마음을 오래 울린다.
<작가소개>
작가 김시유
사랑 예찬론자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김시유는 감정과 사유를 꺼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20대 MZ세대 작가로서, 고통의 언어를 회피하지 않고 아름답게 직면하는 글을 쓴다.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랑’이라 믿으며, 그 믿음을 문장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전작 『중독되다, 중독하다』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했고, 이번 책에서는 감정의 마비를 견디며 다시 살아내는 법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목차>
제1부. 웃지 않는 아이
01. 침묵은 나의 가장 오래된 언어다
02. 이 울컥함은 어디서 왔을까?
03. 기억은 존재를 확인시킨다
04. 오늘도 나를 버티게 해야 한다
05. 우리는 모두 병들어 있다
제2부. 치유라는 이름의 빛
01. 괜찮아, 아직 낯설 뿐이야
02. 처음으로 살고 싶었다
03. 정신과 약은 약점이 아니다
제3부. 치유라는 이름의 그림자
01.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02. 누군가의 온기를 그리워하다
03.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제4부. 나를 파괴하는 것들에 맞서다
01. 난 문란한 여자가 아니야!
02. 나의 삶이고 나의 싸움이었다
03. 이렇게 다시 살아가고 있다
제5부. 그들에게 샴페인을
01.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02. 나는 이제, 사라지지 않기로 했다
03. 괜찮아, 너는 아직 여기 있어
04. 자신을 다시 세운 사람의 이야기
05.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06.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6부. 나에게 샴페인을
01.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
02. 사람을 대할 때 불을 대하듯 하라
03. 나는 희망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 책 본문 中에서>
“감정이 억눌린 채 자란 아이들은 종종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다. 나 역시 그랬다. 친구의 작은 한숨, 선생님의 눈빛 하나에도 온몸이 반응했다. 누군가가 화난 게 아닐까? 실망한 건 아닐까? 늘 걱정했고 긴장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어야 살아남는 법을 알았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감정을 감추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를 고장 난 아이로 정의하기보다, 복잡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정하려 한다. 감정이 벼랑처럼 밀려올 때면 여전히 흔들리지만, 이제는 그 벼랑 끝에서도 한 걸음 더 서보려 한다. 눈물은 여전히 내 안의 오래된 언어지만, 그 언어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법을 천천히 익혀가고 있다.”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그 용기가, 내가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한 시작이었다. 나는 그 첫걸음을 내디뎠고, 그것은 나의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얼어붙은 강 위를 조심스레 걷던 내게 처음으로 건넨 따뜻한 손이었는지도 모른다. 흐릿한 사진처럼 겹겹이 쌓여 있던 고통 속에서도, 나는 결국 다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지금 어두운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쓸 힘도, 말할 용기도 없이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계속 써 내려간다. 누군가에게는 글이, 문장이, 한 문단의 숨결이 살아있는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추천사>
작가는 정신과 약물 치료의 경험, 약물 부작용, 충동성, 감정의 무력화, 사회적 편견 등도 피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그러나 직면하는 언어로 말한다.
“약이 만든 파장은 내 성격과 몸과 관계와 기억까지 바꿔놓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비난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요즘 어떤 약 드세요?’라는 질문은 없었다.”
이 문장 뒤엔 절절한 외침이 숨어 있다. 자기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의 언어다. 타인의 무지한 시선에 침묵하지 않고 그 침묵을 글로 변환하여 공감의 공간으로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이 책은 “누군가의 회복이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내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는 한 문장처럼, 마음의 더 깊은 곳에 닿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어느 날 메모지에 쓴 ‘약에 대해 알아보기’, ‘커피 한 잔 마시기’ 같은 일상적인 다짐조차도 눈물로 번져 나오는 장면에서는, 가장 작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란 사실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이 책의 감동은 바로 거기에 있다.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결말 대신,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쌓여 다시 ‘살아가는 감각’을 되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셀레나 고메즈나 브레네 브라운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고백을 시대적 맥락 속에 정교하게 연결해낸다. 디지털 중독, 보여지는 존재에 대한 강박, 사회적 우울을 아우르며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고통으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처 위에 꽃을 심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작가의 이 말은 단지 문장의 수사가 아니라, 희망이며 책 전체를 꿰는 정서다.
“나는 아직도 다 아물지 않았지만, 그 상처 위에 쓴 문장들은 더는 나를 찢지 않는다.”
이 문장이야말로 회복의 언어, 치유의 미학이다.
나는 이 책을 우울이라는 이름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모든 이에게 건네고 싶다. 감정이 마비된 채,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고통이 타인에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외로움 속에 머무는 이들에게 말이다. 이 책은 말없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너는 아직 여기 있어”라고 말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한 인간의 회복 서사가 독자의 손을 잡는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위로의 방식이며, 가장 아름다운 빛이다.
(김시유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08쪽 / 국판형(148*210mm) / 값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