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폭삭 속았수다’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이 주목받았습니다. 이는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감 있고도 고마운 인사말이지요.
제주도를 떠올리면 예전에는 ‘돌, 바람, 여자’라는 말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과거에 제주도는 부곡 하와이, 수안보 온천과 함께 오랜 시간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뭐니 뭐니 해도 ‘귤’이 제주도의 대표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귤을 생각하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입니다. 신맛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맛’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에서 신맛이 난다면 “혹시 상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합니다. 이는 신맛이 오랜 세월에 걸쳐 부패(腐敗)의 신호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쓴맛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상적부터 우리는 쓴맛을 독성의 경고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신맛’과 ‘쓴맛’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음료가 바로 커피입니다.
최근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맛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에서 신맛이 나면 어색함을 느끼고, 심지어 ‘이 커피 상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커피에서 나는 신맛은 결코 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급 품종인 아라비카 커피 원두의 특징입니다.
사실, 커피는 콩이 아니라 ‘과일’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커피나무의 씨앗인 생두를 볶은 것이며, 커피 열매의 과육은 가공 과정에서 제거됩니다. 그 씨앗에는 다양한 과일 유래의 산(acid)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어, 그로 인해 커피에서 신맛이 나는 것이지요.
커피 속 산미의 과학
커피에 들어 있는 주요 산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래는 커피의 산미를 구성하는 주요 유기산들입니다.
○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항산화 성분으로, 로스팅 과정에서 분해되어 쓴맛을 유발하는 퀴닉산과 카페인산으로 전환됩니다.
○ 시트릭산(Citric Acid): 귤, 오렌지 같은 감귤류에 포함된 산으로, 상큼하고 생기 있는 산미를 제공합니다.
○ 말릭산(Malic Acid): 사과에 들어 있는 산으로, 신선하고 청량한 산미를 부여합니다.
○ 타르타르산(Tartaric Acid): 포도나 와인에서 주로 발견되며, 은은한 포도향과 산미의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 아세트산(Acetic Acid): 식초의 주요 성분으로, 적당하면 산뜻한 발효감을 주지만 과하면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 락틱산(Lactic Acid): 유산균 발효로 생성되어, 커피에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을 더해줍니다.
○ 퀴닉산과 카페인산: 로스팅 시 클로로겐산의 분해로 생기며, 신맛보다는 쓴맛의 배경이 됩니다.
이처럼 커피의 산미는 다양한 과일과 발효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성분이며, 항산화 효과를 통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래된 커피에서 나는 신맛—주로 초산(아세트산)이나 과산화로 인한 산패한 향은 예외적으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맛,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십시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신선한 고산지대 아라비카 커피를 강하지 않게 중간 정도의 밝기로 로스팅한 커피는, 상큼한 과일의 산미와 향을 느낄 수 있고, 이런 커피는 건강에도 매우 유익합니다. 시트러스 계열의 산미는 마치 귤을 한입 베어 문 듯 상큼하고 기분 좋은 여운을 남깁니다.
사람들은 커피의 쓴맛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신맛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두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의 산미를 하나의 ‘미각의 층위’로 받아들이고, 더욱 풍성하게 즐겨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최우성 교수 강원대학교 커피과학과, 감신대 평생교육원, 스페셜티 커피 전공, PhD. 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