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을 운영하거나 팀을 이끄는 리더라면 한 번쯤은 ‘어려운 결단’ 앞에 선다. 오래 함께한 동료, 실력이 뛰어난 직원, 혹은 개인적으로 각별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조직의 원칙을 어겼을 때,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리더의 철학과 조직의 문화를 시험하는 중요한 순간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을 내려놓고 ‘원칙’을 세우는 용기다. 고대 삼국지의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 이야기, ‘읍참마속(泣斬馬謖)’은 감정보다 대의와 기준을 앞세운 리더의 결단이 왜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경영 환경에서도 이와 같은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감정보다 원칙을 택한 국내 IT 보안 기업, ‘센스리티’
2022년, 국내 중견 보안 솔루션 기업 ‘센스리티’(가명)는 내부 감사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설립 초기부터 함께한 핵심 개발자가 외부 스타트업과의 부적절한 기술 공유를 해왔다는 것이다. 이 인물은 팀원들과도 끈끈한 신뢰를 쌓아온 리더급 인재였고, CEO와는 10년 가까운 인연을 유지해온 동료였다.
결정을 미루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CEO는 결국 내부 규정에 따라 징계 및 퇴사 조치를 단행했다. 동시에 사내 전직원 회의를 통해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원칙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이후 조직 내 불필요한 눈치는 사라졌고, 오히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공정한 기업문화에 대한 신뢰가 강화되었다. 외부에서도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줄 아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해 보안 관련 국내외 인증 획득과 신규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창업 동료를 해임한 핀란드 디자인 스타트업, ‘피스티오(Pistio)’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 스타트업 ‘피스티오’는 ‘윤리적 제작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앞세워 주목받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2021년 말, 유럽 대형 유통사와의 협업 과정에서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 계약서를 조작하고, 독단적으로 조건을 변경한 사실이 드러났다.
CEO는 고심 끝에 해당 인물을 직위 해제하고 대외적으로도 공식 입장을 밝혔다. 내부 직원들의 충격과 반발이 컸지만, 그 결정 이후 피스티오는 투명경영을 실천하는 윤리 기업으로 재평가받았고, ESG 투자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에 성공했다. 이후 유럽 친환경 디자인 전시회에 초청되며 브랜드 신뢰도를 크게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의 생존, 원칙이 결정한다
조직을 살리는 리더십은 단순히 사람을 잘 다루는 능력이나 감정적 유연성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되, 그 선택이 조직 전체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고민하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정과 감정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조직의 지속성과 공정함을 위한 기준 앞에서는 제약이 될 수 있다. 특히 MZ세대 구성원이 늘어나는 현재의 조직문화에서는, 리더가 원칙을 지키느냐에 따라 신뢰와 존경을 얻을지, 아니면 위선을 비판받을지가 갈린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오늘날 조직 리더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을 아끼는 것은 감정이지만, 모든 사람을 지키는 건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