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될 거야." 어른들이 흔히 던지는 이 말은 위로일까, 무심한 체념일까. 2025년 6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세 명의 여학생이 함께 생을 마감한 사건은, 그간 사회가 청소년의 고통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다루어왔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여고생 셋은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뛰어내린 장소는 바로 그들이 속해 있던 학교의 지상 5층. 단체로 남긴 유서는 없었고, 주변에서는 “평소 밝고 의욕 있는 아이들이었다”는 말만 반복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밝지 않았다. 밝아 보였을 뿐이다. SNS에는 예민함과 지친 흔적이 남겨져 있었고, 주변 친구들은 “요즘 따라 예민했다”, “잠을 못 자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교사와 상담사도 정기적으로 있었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은 꿈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꿈을 포기하면, 삶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다.
심리적 고립은 때때로 집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세 명이 함께였다는 점은 충동적 결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감정의 공유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는 "요즘 아이들은 유난이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유난스러운 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채, 똑같은 말과 태도로 대응한 어른들이다.

입시 경쟁, 꿈의 유예가 아닌 생존의 전쟁터
예술고등학교는 일반 고등학교보다 더 치열하다. 음악, 미술, 무용 등 각 분야의 실기 준비와 학과 성적, 대입 포트폴리오 작성까지 병행해야 한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연습,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일정은 이들에게 일상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대학 정원과 예체능 분야의 취업 한계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입시가 꿈을 위한 관문이라면, 이들에게는 생존의 방식이 된 셈이다.
하지만 경쟁의 구조는 교실 바깥에서 결정된다. 부모의 재력은 고가의 레슨과 개인지도, 작품 활동의 차이를 만든다. 이 차이는 결국 입시 결과에 직결되고, 학생 간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된다. "나는 왜 레슨을 못 받지?", "왜 내 작품은 이렇게밖에 안 되지?" 자존감은 무너지기 쉽고, 상실감은 빠르게 깊어진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포기’를 고민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도 없다. 진로를 바꾼다는 것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고, 입시를 중단한다는 것은 동급생보다 뒤처지는 삶을 사는 것이라 여겨진다. 탈출구 없는 경쟁, 그 끝은 결국 자신을 향한 분노로 향한다.
정신건강, 아직도 사치인가 – 무너진 지원 체계
최근 몇 년간 교육부는 '학교 내 전문 상담교사 배치'와 '청소년 심리상담 지원'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많은 학교에서 상담교사는 겸임이고, 상담 횟수는 한 학기에 한두 번에 그친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담 환경, 친구들이 지켜보는 눈치 속에서 “선생님,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드물다.
부산 여고생 사건이 보도된 직후, 학생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커졌다. 하지만 이런 외침은 이전에도 수없이 반복됐다. 2011년 대구에서, 2015년 서울에서, 그리고 2023년 인천에서 발생한 청소년 자살 사건 이후에도 정부는 유사한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예산은 부족하고, 일선 학교에는 인력과 시간이 없다. 감정노동에 지친 교사들은 상담 외에도 수업, 평가, 행정 업무에 치인다.
청소년은 가장 예민한 시기를 살고 있다. 외부의 자극에 쉽게 무너지고, 작은 사건에도 좌절한다. 이들을 위한 정서적 안전망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안전망은 아직 사회 곳곳에서 사치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는 준비되어 있는가 – 반복되는 청소년 투신의 경고음
이번 사건을 ‘개인의 불행’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다. 학생의 입시 부담, 가족 내 갈등,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교육 시스템의 한계 등 복합적인 요소가 겹쳐져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를 외면한 채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만 반복한다면, 같은 비극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부산 여고생 3명의 투신은 우리 사회에 묻는다. 정말 그 아이들이 도망친 것은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삶이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경고음을 무시해왔는가. 각종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률은 OECD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10대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는 이 끔찍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응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개혁이다. 정서적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학생을 위한 상담 자원을 지역별로 확대하며, 정신건강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 어른들의 사회가 청소년의 삶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한, ‘다음 희생자’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부산에서 발생한 이 비극은 단지 한 지역,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의 청소년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의 총합이다. 그리고 이 무게는 어른들의 무관심이 더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괜찮아, 참아”라는 말을 위로로 듣지 않는다. 그들은 진심을 원한다. 함께 울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바꿔가자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이제는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이 사건을 뉴스 헤드라인으로만 소비하지 말고, 우리가 무엇을 바꿔야 할지 질문해야 한다. 세 명의 아이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칼럼-이택호 기사 제공]
칼럼니스트
수원대학교 교수, 경영학박사
(사)한국경영문화연구원 원장
고독사예방교육지도사
폭력예방교육지도사
장애인인식개선전문가
웰다잉교육지도사
안전교육지도사
변화와 혁신 및 리더의 역량강화 전문가
“죽기전에 더 늦기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