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조지훈의 4.19 혁명 시 읽기 1

신기용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순수시를 지향했다. 참여시를 발표한 사례도 있다. 그가 주장한 ‘순수시 시론’과 관련이 있다. 그는 순수시의 범주 내에 현실 참여적 목적시를 포함한 것이다. 

 

4.19 혁명 시기에 발표한 시편 가운데 「터져 나오는 함성」(1960. 4. 13.), 「혁명(革命)」(1960. 4. 27.),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1960. 4. 20.),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우음(偶吟)」, 「이 사람을 보라」 등이다. 이 가운데 「혁명(革命)」을 수정 보완하여 5연에서 9연으로 개작한 시가 있다. 시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이다. 

 

순수시를 지향했던 조지훈이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를 제외한 이들 시편을 제5시집 『여운(餘韻)』(1964)에 수록했다. 신문이나 사화집 등에 발표하였지만, 이 시집에 수록하지 않은 일부 참여시는 『조지훈 전집―시 1, 2』(일지사, 1973)와 『조지훈 문학론―조지훈 전집3』(나남, 1996)에 수록했다. 먼저 조지훈 시인이 지향한 ‘순수시 시론’을 읽어 본다.

 

순수시는 경향시에 대한 정통시요, 순수시의 영역은 정치·종교·사회 어디에도 갈 수 있는 무제한이나 다만 시가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무제한이며, 시의 가능성은 그 출발점이 시에 있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순수시를 사상이 없고 정치가 없고 현실 내지 시대가 없다고 보는 이들은 시는 주로 정치적 사회적 사상을 뼈다귀로 하고 거기에 약간 미사(美辭)의 옷을 입히는 거쯤인 줄 알기 때문에 사상과 시가 물에 기름 탄 것처럼 뜨는 것을 고민한다. 

 

그러나 순수한 시는 어디까지든지 주정치(主政治), 주사상적(主思想的)이 아니며 먼저 시로서 입명(立命)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의 순수시 속에 절로 혈액이 된 ‘사상과 자각’, ‘시대정신과 파악’, ‘현실의 추구’가 시를 무슨 고정 공식 관념의 효용서(效用書)로 오해하는 맹목한 사람에게 한해서는 일곱 번 환생을 해도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조지훈 『조지훈 문학론―조지훈 전집3』 나남, 1996, 229쪽.).

 

이와 같이 조지훈은 “순수한 시는 어디까지든지 주정치(主政治), 주사상적(主思想的)이 아니며 먼저 시로서 입명(立命)하려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순수시는 정치와 사상을 먼저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시대정신과 현실성을 반영하는 현실 참여시도 순수시의 범주 안에서 창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런 측면에서 순수시에 천착한 조지훈 시인도 4.19 혁명 참여시를 적극적으로 발표하였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녹아 흐르는 시 한 편을 읽어 보고자 한다.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라는 시이다. 『불멸의 기수』(성문각, 1960. 6. 5.)에 발표했다. 『조지훈 전집―시 1, 2』(일지사, 1973)와 『조지훈 문학론―조지훈 전집3』(나남, 1996)에 수록한 시이다. 시 「혁명(革命)」을 개작한 시이기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의 존재 여부는 밝혀진 상태이다. 『불멸의 기수』에 수록한 시를 아래와 같이 읽어 본다.

 

그것은 홍수였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

“백성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이 불의한 권력을 타도하라”

 

홍수라도 그것은 탁류가 아니었다

백성의 양심과 순정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푸른 샘물이었다

 

아아 그것은 파도였다

동대문에서 종로로 세종로로 서대문으로 역류하는 이 격류는

실상은 민심의 바른 물길이었다

쓰레기를 구데기를 내어버린 자 그 죄악의 구덩이로 몰아붙이는

그것은 피눈물의 꽃파도였다

보았는가 너희는

남대문에서 대한문으로 세종로로 경무대로 넘쳐흐르는 그 파도를

이것은 의거

이것은 혁명

이것은 안으로 안으로만 닫았던 민족혼의 분노였다

온 장안이 출렁이는 웃다가 외치다가 울다가 쓰러지다가

끝내 흩어지지 않은

이 피로 물들인 외침이여

아 시민들이여 온 민족의 이름으로

일어선 자여

 

그것은 해일이었다.

바위를 물어뜯고 왈칵 넘치는

불퇴전의 의지였다 고귀한 핏값이었다

무너지는 아성

도망가는 역적

너희들을 백성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않고는

두지 않으리라 의분이여 저주여

법은 살아왔다 백성의 손에서

정의가 이기는 것을 눈앞에 본 것은

우리 평생 처음이 아니냐 아아 눈물겨운 것

 

불의한 권력에 붙어

백성의 목을 조른 자들아

불의한 폭력에 추세하여

그 권위를 과장하던 자들아

너희 피 묻은 더러운 손을

이 거룩한 희생자에 대지 말라

 

누구를 위해 피 흘렸느냐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위하여 죽어갔느냐

끝내 지켜보리라

 

빛을 불러놓고 먼저 간 넋들이여

이 전열에 부상하여 신음하는 벗에게

너희 죄지은 자의 더러운 피를 수혈하지 말라

이대로 깨끗이 죽어 갈지언정

썩은 피를 그 몸에 받고 살아나진 않으리라

 

양심의 눈물만이

불순한 피를 정화할 수 있느니라

죄지은 자여 사흘 밤 사흘 낮을

통곡하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그것은 천리였다

그저 터졌을 뿐

터지지 않을 수 없었을 뿐

애국이란 이름조차 차라리 붙이기 송구스러운

이 빛나는 파도여

해일이여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 전문

 

인용 시는 조지훈의 「혁명(革命)」을 개작한 시이다. 「혁명(革命)」은 ‘경향신문’ 복간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쓴 축시(1960. 4. 27.)이다. 이는 ‘경향신문’ 복간에 대한 감회를 드러낸 시이다. 인용 시는 이 감회에 추가하여 자유당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은 학생들을 향한 추모의 내용으로 개작하였다. 달리 보면, 부패한 독재 자유당 정권을 향한 분노이다. 나아가 가해자 자유당 정권의 진정한 반성과 참회를 바라는 심정을 담았다.

 

현시점의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내란)의 총부리에 대항하여 절제된 저항으로 이룩해낸 민주주의 회복과 겹쳐 읽힌다. 4.19 혁명 당시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한 기상과 현시점의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국민의 염원은 분명 역사적 가치가 있다. 우리 민족은 국난과 불행을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저력이 있다. 3.15 부정 선거, 5.16 군사정변, 12.12 군사 반란도 이겨내고 민주주의 꽃을 피운 민족이다. 민주주의 꽃은 총부리에 겁먹지 않는다. 꺾이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7.02 09:55 수정 2025.07.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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