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은 전라좌수군, 전라우수군, 경상우수군이 그 주요 전력을 이루었다. 당시 전라우수군은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년)가 지휘관이었으며, 그 휘하에는 임치첨사와 가리포첨사 두 명의 첨사(僉使)가 있었고, 두 첨사는 각각 그 휘하에 여러 명의 만호를 두었다. 임치첨사가 관할하던 임치진은 지금의 전남 무안군 해제면 임수리에 있던 수군진으로서, 목포만호, 다경포만호, 법성포만호, 검모포만호 등이 임치첨사의 지휘를 받았다.
임진왜란 시기 임치첨사를 지낸 장수는 홍견(洪堅, 1535~1610년)이다. 전라우수군의 주요 지휘관인 두 첨사 가운데 한 명이므로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의 활약과 큰 관련이 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름은 당연히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필자는 예전에 홍견의 신상과 행적에 관해 기록한 『도장선생유사(道庄先生遺事)』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책은 홍견의 족보, 연보(年譜), 평생록(平生錄), 군수록(軍需錄), 무과방목, 사우록(師友錄), 행장, 묘갈명 등을 수록한 자료이다.
『도장선생유사』는 한문으로 기록된 자료이므로 한자에 어느 정도 익숙한 분이라도 그 내용을 제대로 정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작년 2024년 말에 『도장선생유사』의 번역서가 발간되고 또한 『도장선생유사』의 내용을 자세히 연구한 논문인 '임진왜란 7년 임치진첨절제사 홍견 장군의 생애와 고찰'이라는 글도 출간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강원도 동해문화원에 계시는 연구원께서 이 자료들을 소개하고 우편으로 보내주셔서 이 책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홍견의 『도장선생유사』의 내용 가운데 필자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일부 소개하면서 이 자료의 가치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도장선생유사』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연보는 홍견이 태어난 해부터 세상을 떠난 해까지, 연도별로 홍견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글이다. 연보는 조선시대 인물들에 관한 기록인 행록, 행장, 유사 등에 종종 나타나는 글이다. 『도장선생유사』의 연보에 나타난 기록 가운데 일부는 당대의 다른 여러 문헌을 통해 그 사실 여부가 검증된다. 예를 들어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도장선생유사』, 연보
경진년(1580년) [선생 46세]
4월에 아들 원해가 부태묘 별시 제25명에 급제하였다.
(원문) 四月 子源海中 附太廟 別試第二十五名.
위 기록은, 홍견이 46세가 되는 1580년에 그의 장남 홍원해(洪源海)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서술한 것이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서 제공하는 『경진별시문무과방목』에서도 홍원해가 급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진 별시는 경진년인 1580년에 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를 태묘(太廟)에 부제(袝祭)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치러진 과거시험(문무과)이다. 태묘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종묘(宗廟)의 정전(正殿)을 가리키는 말이며, 부제(袝祭)는 신위를 모신 곳에 제물을 차려놓고 향을 피우는 의례를 말한다. 『선조수정실록』의 1580년 3월 기사(14권, 선조13년-1580년 3월 1일 경자 11번째 기사)에서도 인순왕후를 태묘에 부제하고 별시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즉, 위 『도장선생유사』 연보에 나타난 홍원해의 별시 기록은 그해 과거시험이 치러진 역사적 배경을 거의 정확히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도장선생유사』, 연보
무자년(1588년) [선생 54세]
4월에 셋째 아우 확이 알성 별시에 급제하였다.
(원문) 四月 第三弟確中 謁聖別試.
위 기록은, 홍견이 54세가 되는 1588년에 그의 셋째 아우 홍확이 과거에 급제한 것을 서술하였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588년에 알성시가 있었는데, 그 합격자를 기록한 방목은 현전하지 않는다. 알성시는 왕이 성균관 문묘에서 공자의 신위에 참배한 다음 시행하는 과거를 말한다. 『선조실록』의 1588년 5월 기사(22권, 선조21년-1588년 5월 29일 신해 1번째 기사)를 살펴보면, 선조가 성균관의 명륜당(明倫堂)에서 알성시를 봐서 무사 등을 선발한 사실이 확인된다. 그 합격자를 기록한 방목은 현전하지 않지만, 『선조실록』의 기사를 통해 홍확의 과거 급제 기록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장선생유사』 연보에는 조선시대 전라좌수영 소속 진포(鎭浦)의 소속에 관한 정보도 일부 제공한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도장선생유사』, 연보
신묘년(1591년) [선생 57세]
8월에 진위장군 수 사도진관 방답수군첨절제사에 제수되었다.
(원문) 八月 除振威將軍 守 蛇渡鎭管 防踏水軍僉節制使
위 기록은, 홍견이 57세가 되는 1591년에 사도진관에 속한 방답진의 첨절제사로 제수되었다고 서술하였다. 사도진과 방답진은 모두 전라좌수영에 속한 진포로서 둘 다 지휘관이 첨사이므로 지휘 체계상 동격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 기록은 방답진이 사도진에 속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으므로 혹시 오류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예전부터 방답진이 '사도진관(蛇渡鎭管)' 소속일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종종 제시되어 왔다. 우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된 『조선시대 수군진조사2-전라좌수영편』이 이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 전남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여수해양사론』(227~228쪽)은, 『승정원일기』(인조 때 일기)나 『호남진지』 등의 사료에 방답진이 '사도진관' 소속으로 서술된 사례까지 예로 들면서 본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또한 『여수해양사론』은 『대동지지』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방답진이 종3품 첨철제사(僉節制使)가 아닌 종4품 동첨철제사(同僉節制使)가 지휘하는 진포였을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조선 후기 법전인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각 책에 수록된 「병전」을 살펴보면 '사도진관(蛇渡鎭管) 방답(防踏)'의 지휘관이 '동첨철제사(同僉節制使)'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들 사료를 통해 방답진이 최소한 조선 후기에는 사도진관에 속한 곳이었고 지휘관이 동첨절제사였음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위 『도장선생유사』의 연보는 방답진이 사도진관 소속임을 입증하는 또 다른 근거 사료로 해석된다. 이 연보는 더 나아가 임진왜란 직전에도 방답진이 사도진관 소속이었음을 보여준다. 방답진이 임진왜란 70년 전인 1520년대에 설치된 점을 고려하면, 아마 방답진은 설치 시기부터 사도진관 소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91년 당시 홍견의 품계가 정4품 진위장군이고 벼슬 앞에 '수(守)'를 쓴 점으로 보아, 이 시기 방답진의 지휘관 벼슬은 종4품 동첨철제사가 아닌 종3품 첨철제사였던 것 같다. 참고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행(行)’, 관직이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수(守)’를 관직 앞에 쓴다.

『도장선생유사』 연보에 따르면, 홍견은 1604년 10월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군기시(行軍器寺) 부정(副正)에 제수되고, 1605년에는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받았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여러 사본이 현전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홍견의 관직과 이름이 '부정(副正) 홍견(洪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도장선생유사』 연보의 기록과도 부합한다.
지금까지 『도장선생유사』에 수록된 연보의 일부 기록을 살펴보았다. 기록의 일부는 다른 문헌과 비교 검토를 통해 사실 여부가 확인되며, 어떤 기록은 관련 연구 자료를 통해 그 사료적 가치가 드러나기도 한다. 연보를 면밀하게 연구한다면, 아마도 많은 새로운 역사적 정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연보뿐만 아니라 군수록, 무과방목, 사우록, 행장 등 『도장선생유사』에 수록된 다른 기록에도 중요한 정보가 숨어 있을 것이다. 추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연구 노력이 요구된다.
『도장선생유사』는 강원도 강릉시 소재 율곡연구원에서 영인본과 번역본을 하나의 책으로 합본하여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의 11번째 책으로 출간하였다. 또한 『도장선생유사』 원문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와 율곡연구원 강원 한국학 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그 디지털화된 원문을 제공하고 있다.
『도장선생유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인물 홍견을 연구한 논문 '임진왜란 7년 임치진첨절제사 홍견 장군의 생애와 고찰'은 동해문화원에서 출간된 『동해문화』 제21호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시대 사료DB,『속대전』/『대전통편』/『대전회통』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경진별시문무과방목(庚辰別試文武科榜目)』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선시대 수군진조사2-전라좌수영편』, 2014,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변동명, 『여수해양사론』, 2010, 전남대학교 출판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1001호 양산이씨 종가 고문서,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김정기, 『도장선생유사』, 2024, 율곡연구원
홍협, 「임진왜란 7년 임치진첨절제사 홍견 장군의 생애와 고찰」, 『동해문화』 24, 2024, 동해문화원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