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논리로는 닿지 않는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

임이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면서 지내는 동안, 진행하는 연구의 흐름은 논리적이면서 적법해야 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계산하는 일을 끊임없이 훈련한다. 그런데 나는 시(詩)를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어쩐지 연구에 골몰하다가도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자주 말한다.

 

그렇게 ‘말이 안 되는’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학술적인 개념과 단어는 자주 헷갈리고, 배운 사람처럼 고상하기는커녕 괴짜가 되곤 한다. 그러고 나면, 한없이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창밖에 나뭇가지가 꽃잎을 떨구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오늘 소개할 드니 빌뇌브 감독의 초기작 <그을린 사랑(2019)>은 나처럼 대학원을 다니는 처지에, 수학 이론을 전공하는 잔느와, 그녀의 쌍둥이 남매 시몽이 돌아가신 어머니 나왈 마르완의 유언장을 집행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유언장에는 죽은 사람이 받고 싶은 애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거니와,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잔느와 시몽의 또 다른 형제와, 아버지를 찾아 미봉된 편지를 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을 찾은 후에, 잔느와 시몽에게 남긴 편지도 읽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탐탁지 않아 하는 아들 시몽은 어머니의 유언을 냉소하지만, 딸 잔느는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을 느낀다. 이후, 잔느는 대학 지도 교수의 도움을 받아 투덜대는 시몽을 뒤로한 채 홀로 어머니의 고향 ‘다레쉬’를 찾아간다. 영화에서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있지만, 어머니인 나왈의 과거에 등장하는 다레쉬 배경을 살펴보면 현실의 19세기말 레바논 내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진행된다. 어머니 나왈은 과거에 종교적 배경 탓에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사랑하는 연인과 도망가려다 그녀의 형제로부터 연인의 목숨을 빼앗기고, 이후 뱃 속의 아이를 혼자 낳아 고아원에 보낸다. 떠나보낸 아이를 언젠가는 다시 찾겠다고 약속한 채, 도심으로 내려가 기독교 친척 집안에서 학교를 다니며 지식을 배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독교 민병대와 무슬림 무장 조직의 전쟁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아들을 찾아 홀로 다시 고향을 찾아간다.

 

그러나 찾아간 아들을 맡긴 고아원은 전쟁 속 폐허가 된 지 오래다

 

아이를 찾아 전쟁 위험 구역까지 스스럼없이 걸어 들어간 나왈은, 그곳에서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총구에 붙이고 무슬림 민간인들을 가차 없이 학살하는 현장에서 잃어버린 아들과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죽이는 것을 목격하는 등, 전쟁의 비극을 몸소 경험하며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이 처한 현실의 부당함에 분노하여 무슬림 무장 단체에 스스로 들어가 기독교 민병대의 우두머리를 암살한다.

 

이후 나왈은 감옥에 수감되었고,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에게 모진 성고문을 당하면서도 불러오는 배를 원망하지만, 무너지는 정신을 노래로 버티며 ‘72번 수감자는 노래하는 여인’으로 알려지게 된다.

 

두 번의 환영받지 못하는 출산을 경험한 나왈. 이후 나왈의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잃어버린 형제와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되며 영화는 비극과 반전으로 치닫는다.

 

전쟁은 진정 ‘말도 안 되는’일이 너무도 당연하게 주변을 비극으로 물들인다. 전쟁이 계속되면, 무기를 소지한 자를 제외한 노인과 아이, 그리고 여성은 가장 위험에 처하기 마련이며, 전쟁에 휘말린 모두가 양분화된 전쟁 진영에 매번 모욕과 치욕을 견뎌내야 한다. 전쟁에는 나왈이 쌓아온 지식과 종교조차 사장(死藏)되며 증오와 분노, 그리고 절망만이 피의 강물처럼 흐른다.

 

나는 영화에서, 잔느의 지도 교수가 잔느에게 “당신은 ‘직감’때문에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모든 것이 논리 정연해야 하고, 합리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학’조차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직감과 용기가 있지 않으면 해내기 어렵다는 말은, 사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기도 하다.

 

‘1+1은 2’라는 것은 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증명된 일반적인 사실로 여겨진다. 그러나 영화 끝자락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실이 1+1은 1일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알고 싶지 않아도, 관객은 알게 된다.

 

진실은 생각보다 말도 안 되는 일,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전쟁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비극 속에선 더욱이말이다.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남매는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중략)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덕분에 마침내

약속을 지켜냈구나.

 

흐름은 끊어진 거야.

 

너희를 달랠 시간을 드디어 갖게 됐어

자장가를 부르며 위로해 줄 시간을.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너희를 사랑한다.

 

-영화 ‘그을린 사랑’, <나왈의 마지막 편지> 중에서.

 

다시 나뭇가지가 꽃잎을 떨구는 연구실 창 밖

 

나는 수업시간에 또 한 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뒤, 연신 이성적으로 돌아와, 다분한 학자의 머리로 후회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 모자란 지식을 비웃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 발칙한 태도를 거북해할 것이다. 어쩐지 오늘은 내가 아껴 마다하지 않는 그 영화를 또 보고 싶다. 한 여인의 위대하고도 고독했던, 그을린 사랑.

 

영화의 내용처럼, 여전히 나는 1+1이 1일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논리와 합리로 묶이는, 이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보다 많은 세상의 진실을 부디 잊지 말아야지.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각과 직관에 기댄 채 세상으로부터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다. 그러니 1+1이 2가 아니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욱이 되고 싶지 않다.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5.07.04 10:33 수정 2025.07.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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