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에 원래 살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은 화가 오스왈도 구야사민 미술관 (Casa Museo Guayasamin)

남아메리카의 역사를 담은 그림

 

 

 

 

 

 남미를 여행하더라도 한국인이 에콰도르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가더라도 에콰도르 본토를 여행하는 경우는 잘 없다. 나의 남미 여행은 서쪽 해안이고 보고 싶은 분이 있어서 에콰도르에 머물렀다. 에콰도르 수도는 키토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가기 전 영어권 신문 기사를 읽고 갈 미술관 목록을 정해서 몇 군데를 다녔다. 간 곳 중 어느 곳부터 기사를 쓸지 하다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한 구야사민 미술관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Casa Meseo Guayasamin’ 이라는 이름처럼 집이였던 곳을 미술관으로 바꾼 장소이다. 

 

 언덕 위에 위치해서 대중교통 좋은 키토에서 찾아가기 힘들어서 아래에서 택시를 타고 올라갔다. 키토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게 한 가지가 있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한 곳은 서민이 산다. 대중교통이 가기 힘든 곳은 부촌인 경우가 많다. 빈부격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가난한 나라 남아메리카로 알지만, 스쳐 지나가며 본 부촌은 진짜 대단하다. 공항에서 키토 시내 들어갈 때 부가티 매장 보고 놀란 적 있다.

 

 왜 남미는 빈부격차가 심할까. 가난한 분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좋은 분들도 많았다. 물론 도둑도 강도도 많은 곳이 남미이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선한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하다. 게다가 그분들이 게으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가난하게 사는지 마음이 아플 뿐이다. 

 

 남미 여행 가기 전 읽은 몇 가지 책에서 그들의 역사를 보면 서구인들의 잔인성이 느껴진다. 최근 읽은 ‘총 균 쇠’에서 이런 부분을 더 잘 설명한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라는 스페인 군인은 잉카제국 황제 아타우알파를 속여 포로로 잡고, 적은 수의 군인으로 잉카제국을 점령했다. 그들은 총칼로 원래 살던 이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몸에 지니고 온 병균이 퍼져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리고 200년이 넘게 지배했고, 인디언이라 불리는 원래 살던 이들은 살아남았지만, 열악한 조건에서 살고 있다. 

 이런 인디언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은 이가 오스왈드 구야사민(Oswaldo Guyasamin)이라는 작가이다. 그의 미술관도 미술관과 인간의 성전이라 불리는 두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성전을 보고 나오면 숨을 쉬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 4.3을 그리는 작품을 보고 나서 한동안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구야사민의 인간의 성전에서 본 인디언의 고통을 묘사한 작품은 진짜 강렬하다. 미술관을 나와 맑은 하늘을 봐도 가슴이 어둡고 먹먹하다. 정말 몇 번이고 깊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고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의 집은 식민지 시대 양식의 아름다운 집이다. 남미를 돌아다니면, 스페인에서 봤던 익숙한 양식의 건물들이 많다. 오래된 건물은 아름답기도 하면서 묘한 감정이 든다. 저 건물들을 역사적 유적으로 볼 것인가, 식민지 억압의 상징으로 볼 것인가. 인디언의 역사를 알수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인디언이라는 말 대신에 더 좋은 말은 없는 건지 자신에게 묻는다. 인디언이라는 말 자체도 식민지 정복자들이 제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다양한 부족들이 잉카제국과 마야 제국외에는 국가 형태가 아닌 부족 형태 수준으로 살았다. 그 다양한 부족 중 많은 부족이 식민지 정복 과정에서 사라졌다. 남은 부족도 구성원 수가 많이 줄었다. 

 

 미술관을 나와 맞은 편에 목장은 아닌데 말이 있다. 그때는 말을 보며 어두워진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총 균 쇠’를 읽고 나니 말도 유럽인들이 가져온 것이다.

 

 남미는 먼 곳이라 가면 유명한 곳만 가도 일정이 빡빡하다. 그래서 특별히 미술관을 둘러볼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흥밋거리로 원주민을 보러 갈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일제강점기, 19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도쿄권업박람회’가 열렸다. 일본은 ‘학술인류관’을 차려놓고 조선인 그리고 대만인, 아이누인, 류큐인을 전시했다. 아이누인은 현재 홋카이도에 살던 이들이고 류큐인은 현재 오키나와에 살던 이들이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조선인 유학생들은 분노했다. 

 

 물론, 원주민들을 자기들 동네에서 살면서 가끔 관광객을 맞이하기에 전시된 조선인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생각해 본다. 

작성 2025.07.04 21:58 수정 2025.07.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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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