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조지훈의 4.19 혁명 시 읽기 2

신기용

순수시를 지향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녹아 흐르는 시를 발표한 적 있다. 1960년 4.19 혁명 때 학생의 편에 서서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를 발표했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헌시(獻詩)이다. 당시 고려대학교의 4.18 의거를 지켜보면서 뉘우침의 시를 학보(1960. 4. 20)에 발표한 헌시(獻詩)이다. 추모시 성격의 목적시이다. 

 

4.19 혁명 다음 달에 춘조사에서 발행한 『뿌린 피는 영원히』(1960. 5. 19.)라는 시집에도 수록했다. 한국시인협회가 ‘4월 혁명 희생 학도 추모 시집’으로 엮었다. 4.19 혁명 때 희생당한 학생들의 의기와 넋을 기리는 시편으로 엮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내란) 상황과 겹쳐 읽힌다.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의분(義憤)이 터져

노도(努濤)와 같이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연구실(硏究室) 창턱에 기대앉아

먼산을 넋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2시(午後 二時) 거리에 나갔다가 비로소 나는 너희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의사당(議事堂) 앞에 넘치고 있음을 알고

늬들 옆에서 우리는 너희의 그 불타는 눈망울을 보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날 비로소

너희들이 갑작이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까닭이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무거웠다.

나의 두 뺨을 적시는 아 그것은 뉘우침이었다.

늬들 가슴속에 그렇게 뜨거운 불덩어리를 간직한 줄 알았더라면

우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기개(氣慨)가 없다고

병든 선배(先輩)의 썩은 풍습(風習)을 배워 불의(不義)에 팔린다고

사람이란 늙으면 썩느니라 나도 썩어가고 있는 사람

늬들도 자칫하면 썩는다고……

 

그것은 정말 우리가 몰랐던 탓이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 자라 악을 쓰며 지켜왔어도

우리 머리에는 어쩔 수 없는 병든 그림자가 어리어 있는 것을

너의 그 청명(淸明)한 하늘 같은 머리를 나무램 했더란 말이다.

나라를 찾고 침략(侵略)을 막아내고 그러한 자주(自主)의 피가 흘러서 젖은 

땅에서 자란 늬들이 아니냐.

그 우로(雨露)에 잔뼈가 굶고 눈이 트인 늬들이 어찌

민족만대(民族萬代)의 맥맥(脈脈)한 바른 핏줄을 모를 리가 있었겠느냐.

 

사랑하는 학생들아

늬들은 너희 스승을 얼마나 원망했느냐

현실(現實)에 눈감은 학문(學問)으로 보따리장수나 한다고

너희들이 우리를 민망히 여겼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우린 얼굴이 뜨거워진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사실은 너희 선배(先輩)가 약했던 것이다 기개(氣慨)가 없었던 것이다.

매사(每事)에 쉬쉬하며 바른말 한마디 못한 그 늙은 탓 순수(純粹)의 초연(超然)의 탓에 어찌 가책(苛責)이 없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꾸짖고 욕한 것은

너희를 경계하는 마음이었다. 우리처럼 되지 말라고

너희를 기대함이었다. 우리가 못할 일을 할 사람은 늬들뿐이라고

사랑하는 학생들아

가르치기는 옳게 가르치고 행(行)하기는 옳게 행(行)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따귀를 때리는 것쯤은 보통인

그 무지한 깡패 떼에게 정치를 맡겨 놓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늬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 줄 알았더면 정말

우리는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르칠 게 없는 훈장이니

선비의 정신이나마 깨우쳐 주겠다던 것이

이제 생각하면 정말 쑥스러운 일이었구나

사랑하는 젊은이들아

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 놓고

어둠 속에 먼저 간 수탉의 넋들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하늘도 경건(敬虔)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아 자유(自由)를 정의(正義)를 진리(眞理)를 이원(念願)하던

늬들 마음의 고향 여기에

이제 모두 다 모였구나

우리 영원(永遠)히 늬들과 함께 있으리라.

―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전문 

(한국시인협회 편, 『뿌린 피는 영원히』, 춘조사, 1960, 153-157쪽.)

 

인용 시는 4.19 혁명 때 조지훈 시인이 몸을 담았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기개를 찬양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참회록 성격의 시이다. 일제에 적극 저항하지 못한 뉘우침을 반영한 윤동주의 ‘참회록’과 겹쳐 읽힌다. 달리 보면, ‘참여시’로 읽힌다.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의 상황과 겹쳐 읽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시행은 5연의 “매사(每事)에 쉬쉬하며 바른말 한마디 못한 그 늙은 탓 순수(純粹)의 초연(超然)의 탓에 어찌 가책(苛責)이 없겠느냐.”이다. 이는 순수시, 순수문학을 지향한 자신에 대한 성찰이고 반성이다.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현실 참여를 회피한 자신의 신념에 대한 자아비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따귀를 때리는 것쯤은 보통인 / 그 무지한 깡패 떼에게 정치를 맡겨 놓고 /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늬들만이 아니었다.”라며 자유당이 하수인으로 앞장세운 정치 깡패들에게 수모를 당한 교수들의 심정을 밝힌다.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당의 자유 억압과 폭력 행위를 그대로 까발린 것이다.

 

인용 시의 긍정적인 부제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부정적인 내란 수괴와 중요종사자들을 배출한 대학이나 사관학교의 스승들도 뉘우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 선배나 후배들도 성찰해야 한다. 어릴 때 골목길에 똥장군이 지나가면, 그 똥 냄새가 며칠 동안 고여 있었다. 이와 같이 그들을 배출한 대학과 사관학교는 반역의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수년에 거쳐 환골탈태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군사 정변, 군사 반란의 수괴와 중요종사자, 내란의 중요종사자들을 배출한 사관학교는 폐교 수준의 쇄신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7.09 10:19 수정 2025.07.09 10:5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자유발언]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감정의 산물, 낙서
무지개가 바로 나
기차와 독서
인생은 기다림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 (2부)#음악학원운영 #학원운영철학 #100명넘..
100명이 넘는 음악학원을 운영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음악학원운영 #학..
채송화
소나무
기다림
자유
6.21 제3기 마포구 어린이청소년의회 발대식 현장스케치
6월 13일 제10대 관악구 청소년 자치의회 발대식 현장 스케치
[현장스케치] 제16대 청소년 의회 본회의 현장 탐구하기
도시와 소나무
잭과 콩나무
거미
아침안개
누구냐, 넌
2025년 7월 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