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격차 줄이는 기술, 시니어와 AI의 따뜻한 동행

“요즘은 손자보다 AI가 더 똑똑해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68세 박정자 씨는 최근 AI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엔 AI에게 김치찌개 레시피를 묻고, 어르신 모임 홍보 포스터도 직접 만들었다. 단순히 스마트폰 기능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자연어 처리 기술까지 시니어 세대가 직접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흐름은 정반대다. 시니어들이 직접 AI를 배우고 활용하면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다시 잇고 있다.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AI를 통해 얻는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시니어 세대가 인공지능을 배우는 이유와 그들이 실제로 삶 속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교육 현장의 변화, 정책의 흐름,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대 간 화합의 가능성을 함께 살펴본다
1. 디지털 문해력, 시니어의 새로운 생존기술이 되다
“스마트폰만 잘 써도 손자들한테 전화 안 걸고도 살 수 있어요.”
경기도 분당에 사는 72세 김미화 씨는 최근 인공지능(AI) 기초 교육을 수료했다. 채팅봇으로 질문하고, 음성 명령으로 문서 작성을 해보면서 ‘디지털 문맹’이었던 자신이 ‘AI 사용자’로 변했다며 웃는다.
고령 인구가 전체 사회의 큰 축을 이루는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문해력’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기본, AI 챗봇과 생성형 인공지능까지 활용하는 시니어들이 증가하고 있다. 단순한 편의성 차원을 넘어 사회와 단절되지 않기 위한 ‘생존기술’로 자리 잡는 중이다.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만 60세 이상 시니어 중 약 38%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지만, 동시에 58%는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만큼 시니어들은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지원도 이들을 디지털 주체로 전환시키고 있다.
2. AI 교육에 뛰어든 70대, 스마트폰을 넘어 생성형 AI까지
서울 서대문구의 한 평생학습관에서는 ‘시니어 AI 활용법’ 강의가 매주 열린다. 수업에 참여한 75세 정영수 씨는 최근 친구들과 AI 챗봇을 활용해 여행 계획을 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손자보다 더 똑똑한 것 같아요. 원하는 걸 말만 하면 다 해주니까요.”
이처럼 단순히 스마트폰의 문자 전송이나 인터넷 검색을 넘어, 최근 시니어 세대는 생성형 AI, 예를 들어 ChatGPT와 같은 도구를 실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AI에게 건강정보를 물어보거나, 은행 업무를 돕게 하고, 심지어는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시니어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디지털교육진흥원의 윤미숙 연구원은 “시니어들이 AI를 배우면 인지 능력 유지와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며 “디지털 소외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3. 고령사회 속 ‘디지털 포용’ 정책의 현재와 미래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다양한 ‘디지털 포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 행정안전부는 공동으로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을 운영하며,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전국 1,200여 개 기관에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도 ‘찾아가는 AI 교육버스’나 ‘동네 IT교실’ 등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직접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전체 시니어 인구의 50%가 디지털 기초교육을 수료하도록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격차는 존재한다. 농어촌과 저소득층 시니어의 참여율은 도심에 비해 현저히 낮고, 일부 교육은 일회성에 그쳐 실질적 역량 향상에 제한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교육 시스템과 시니어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4. 세대 격차 줄이는 기술, 시니어와 AI의 따뜻한 동행
기술은 사람을 분리할 수도, 연결할 수도 있다. 시니어들이 AI를 배우는 것은 단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고 젊은 세대와 연결되기 위한 ‘마음의 다리’다.
부산에 거주하는 68세 김영철 씨는 최근 손자와 함께 AI 그림 생성기를 이용해 가족 포스터를 만들었다. “같이 웃고, 같이 놀았어요. AI 덕분에 손자와 대화도 많아졌죠.”
이러한 경험은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세대 간의 정서적 간극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 시니어는 더 이상 뒤처지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배우고 진화하는 사용자’로서, AI 시대의 새로운 주인공이 될 준비를 마치고 있다.
‘손자보다 똑똑한 AI’를 배우는 시니어들의 모습은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다. 고령화 속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은 시니어를 위한 강력한 생존 도구이자, 세대 간 소통의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시니어를 단지 ‘디지털 소외계층’이 아닌, ‘디지털 동행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