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재난의 시대, 감응의 윤리로 사회를 다시 짓자

이진서

이번 ‘극한 호우’로 어떤 이는 가족을 잃었고, 어떤 이는 자식처럼 키우던 가축을 잃었다. 그 분들껜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더할 수 없는 슬픔을 함께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러한 재난들은 언제나 처음인 듯이 인간이 축조해 놓은 문명의 일부를 무너뜨린다. 어쩌면 재난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가장 비극적인 경고장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 뉴스는 발 빠르게 ‘피해 현황’을 전달한다. 사망자 수, 이재민 수, 주택 피해량 등등, 그러나 이 숫자들은 재난을 일상의 언어로 환원시키며 익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뉴스 그 어디에도 재난과 함께 사라진 존재들, 이를테면 물살에 휩쓸린 고양이, 서식지를 잃은 새와 곤충들, 그리고 말없이 뿌리째 뽑혀 나간 나무들과 풀숲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들은 ‘피해 대상’이라기 보다 자연의 일부로, 그저 문명의 ‘배경’일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의 끄트머리에는 가덕도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이곳에 곧 신공항을 짓겠다고 한다. 철새도래지인 가덕도에 활주로를 놓겠다는 건 철새들과의 충돌을 감수하겠다는 것인데, 승객들의 안전을 염두에 둔다면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만약 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만든다면 해양생태계가 무너질 것은 물론, 향후 유지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로 일본의 간사이 공항은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로 매년 막대한 유지비를 소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 논리만을 내세워 가덕도를 공항으로 만들겠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세계적인 지질학자들도 인정한 천혜의 지질공원 ‘이기대’에 외국 대통령 이름을 따서 만든 퐁피두 미술관 분관을 짓겠다는 계획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 시민들과 제대로 된 공론화도 없이, 무엇보다 그곳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과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다. 

 

부산의 중심 산림인 황령산도 이 같은 몹쓸 짓을 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또 다른 난계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도시의 허파라 불리는 생태 축인 황령산에 스노우캐슬이란 이름의 흉물이 수년째 방치되어 있는 것을 사람들은 벌써 잊은 것일까. 

 

원론적인 생태 담론만을 읊조리며 시민들의 일천한 문화 의식을 탓하기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급박하다. 돌이킬 수 없는 자연 훼손 앞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많지 않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생명들이 밀려나고 사라져가는 이 순간을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차원의 선언이 절실하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 삶의 방식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바꾸는 전면적인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와 있다. 이윤보다 생명을,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을, 속도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다른 감각과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생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이야말로 사회 전 분야에 생태적 가치가 스며들도록 법과 제도, 교육과 문화, 행정과 정치의 모든 구조를 재디자인할 때다. 그것은 단지 환경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어떤 미래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감응의 윤리'다. 감응이란 고통받는 타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능력이며, 그 타자가 비인간 존재일지라도 그 생명과 고통을 감각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다. 감응의 윤리는 생명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해 사회적 선택과 정치적 구조를 흔드는 실천으로 나아간다. 이 윤리는 재난을 단순한 숫자로 환원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하나하나를 응시하는 감각을 요구한다. 그 감각이 곧 새로운 정치이며, 새로운 문화의 기초가 된다.

 

우리가 외면했던 목소리, 말없이 우리에게 곁을 내어줬던 모든 생명들에게 이제 우리가 응답할 시간이다. 이 절박한 전환의 시대에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이 모든 것이 감응의 윤리 위에서 새로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7.21 10:46 수정 2025.07.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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