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랑을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동기로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사회에서의 사랑은 개인주의 확산, 과학기술의 발달, 사회적 규범과 가치관의 변화로 사랑의 개념도 변화하고,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으로 인간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회적인 유대감의 형성 및 공동체 발전의 기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감정을 바탕으로 한다.
사랑에 대해 학자들은 5가지 유형, 즉, 이타적 사랑, 동료적 사랑, 낭만적 사랑, 실용적 사랑, 유희적 사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타적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으로 타인을 위하고 보살피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의 대상이 사랑을 받을 자격 여부나 보상적인 대가와는 무관한 헌신적인 사랑이다. 신의 사랑, 부모의 사랑, 알베르트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가 그 예이며, 성경의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언급한 온유하고 오래 참으며 시기하지 않고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숭고한 사랑이 여기에 해당한다.
동료적 사랑은 친한 친구에게서 느끼는 우정 같은 사랑이다. 동료적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나 일방적인 헌신이 개입되지 않으나 깊은 신뢰와 친근감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평생 동안 인생의 동반자로 풍파를 함께 헤쳐온 노부부 간의 사랑, 같은 일을 꾸준히 함께 해온 동료가 그 대표적인 예다.
낭만적 사랑은 뜨거운 열이 넘친 강렬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과대평가나 우상화, 강렬한 감정을 유발하는 집착 등의 특징을 지닌다. 낭만적 사랑은 불안정하고 지속적이지 못하고, 많은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랑을 눈먼 사랑이라고 한다.
실용적 사랑은 이성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랑을 말한다. 이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선택할 때도 사랑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조건을 고려한다. 상대방의 성격, 가정 배경, 교육 수준, 종교, 취미 등을 고려하여 자신과 맞는 사람을 선택하는 사랑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할 때 선을 본다거나 중매를 통해 상대를 선택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유희적 사랑은 놀이와 같이 재미와 쾌락을 중요시하는 즐기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강한 집착이나 관계의 지속을 고려하지 않는다. 돈환이나 플레이보이 등의 사랑이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사랑은 물질주의 사고에 의해 실용적인 사랑과 유희적인 사랑으로 변질되고 있으나 사랑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 심리적 체험으로 우리의 삶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고 지적으로 이해 불가하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오늘날 사랑의 본질은 수천 년 전과 변함없이 원시적인 사랑 관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예술품이나 문학작품의 명작은 독창성과 혁신적인 작품이거나 감정적인 울림이 강하고, 시공간적인 제약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감정, 철학적인 질문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의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과 성찰을 제기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의 정신적인 지평을 확장한다.
명작의 구체적인 특징으로는 첫째,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의식, 즉,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갈등, 희망을 주제로 한다. 둘째, 보편적인 주제로 사랑, 죽음, 자유, 정의 등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셋째, 다층적인 해석과 의미를 지닌 주제들이다. 넷째, 보편적인 주제를 혁신적이고 탁월한 예술적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위의 주제들을 포괄하여 명작에는 사랑이 근본적인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의 삶과 죽음 자체가 사랑의 연속성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그저 본능적 감정이며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지니고 있는 능력이라고 오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은 진심인데도 현실에서는 자꾸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를 상대의 탓으로만 돌린다. 사랑에 실패했을 때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기보다 대상의 문제로 본다.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랑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사랑은 외로운 인간이 고독을 치유하고 삶을 완성하려는 영업 활동이다. 간절한 감정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고난도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인의 사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통찰해서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의 사회 구조와 이러한 사회 구조로부터 발생한 정신은 성숙하고 생산적인 성격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보기 힘들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자본주의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장에서의 교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품시장은 상품이 교환되는 조건을 결정하고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획득과 판매를 결정한다. 상품은 아무리 유용하고 필요하더라도, 시장에서 수요가 없으면 경제적 교환 가치를 지니지 못하므로, 노동자는 굶어 죽지 않으려면 현재의 시장 조건에 따라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자본이 노동력을 지배하게 되는 이런 경제적 구조가 가치의 위계질서에 반영되면서, 생명이 없는 상품이 살아 있는 인간의 힘, 곧 노동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로 자본주의의 기본 구조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노동은 철저하게 분업화되고 개인은 개성을 잃고 소모적인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면서, 사람은 하나의 상품으로 변하고 개인은 현재의 시장조건 아래서 최대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투자로서 자신의 생명력을 경험한다.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소외된 자동 기계 같은 관계가 되고, 사랑마저도 교환할 수 있고 공정한 거래를 희망할 수 있는 퍼스낼리티라는 상품으로 취급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애정 관계는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교환 형식과 동일하게 작동하게 된다. 시장 지향적이고 물질적 성공이 현저한 가치를 지니는 현대사회의 문화권에서 사랑이란 일종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상대는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자도 나의 명백한 또는 숨겨진 재산과 능력을 고려한 다음 나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거래로 볼 경우, 인간이라는 상품의 가치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고, 가치가 떨어진 모든 상품은 외면당하게 되므로, 결국 거래로 이루어진 사랑은 언젠가 모두 파탄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통적인 사회는 여성의 활동을 억압한 사회였다. 오늘날 남녀평등으로 여권이 신장되면서 경제적인 자립이 이루어지면서부터 결혼 관계가 부당한 거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과감히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해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 때문에 심리적인 상처를 입기도 하고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물질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오늘날 사랑을 교환 가치로만 생각할 때 인간은 비참해진다. 물질로 오염된 정신세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꿈꾸지만 실천하기란 어렵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자기가 가진 적을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거래가 아닌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자가 현대인의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사랑관은 무엇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자신을 뒤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란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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