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천이백팔십사년 전 인간 ‘진시황제’다.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에서 아버지 조이인과 어머니 조희 사이에서 음력 1월 15일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한단에서 가장 아름답고 춤을 잘 추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안국군의 아들이었지만 서자로 태어나서 온갖 설움을 겪다가 조나라의 인질로 끌려갔다. 그러던 중 사업차 한단에 와 있던 거상 여불위에게 잘 보여 후원을 받으며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여불위는 아버지를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할아버지의 부인인 화양을 포섭해서 후계자로 삼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여불위의 노력 끝에 아버지는 자식이 없던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어가 할아버지 안국군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뒤 아버지는 여불위의 집에서 여불위의 첩인 어머니 조희에게 반하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여불위가 어머니 조희를 아버지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런 스토리를 갖고 나는 세상에 나와 ‘영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가을, 증조부 소양왕이 죽고 할아버지 안국군이 효문왕으로 등극했다. 아버지도 양어머니 화양부인과의 약속에 따라 진나라의 태자에 올랐다. 그런데 할아버지 효문왕이 증조할아버지 소양왕의 1년간의 장례를 마치고 정식으로 즉위한 지 3일 만에 세상을 뜨게 되었다. 아버지는 장양왕이 되어 즉위하고 나를 태자로 삼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후견인인 여불위를 승상에 임명했다.
아버지 장양왕은 왕이 되던 해에 여불위를 시켜 동주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조나라를 먹고 그다음 해에는 위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 장수 무기가 5개 국가를 연합해 아버지를 공격했다. 아버지 장양왕은 황하 남쪽으로 퇴각했다. 아버지 장양왕은 왕 위에 오른 지 3년 만인 34살의 이른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내 나이 13살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했다. 어린 나를 대신해 승상 여불위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섭정을 했다. 실상 여불위의 세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불위는 어린 나를 대신하는 상방의 지위를 얻자, 과거 자기 첩이었던 나의 어머니 조태후와 간통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들통날까 봐 가짜 환관인 ‘노애’를 어머니 조태후 옆에 붙여서 시중을 들게 했다. 잘생기고 정력도 좋은 노애는 어머니 조태후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고 노애의 아이를 두 명이나 낳고 아이들을 꼭꼭 감추며 키웠다. 노애는 자기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고 계략을 꾸미기까지 했다. 나는 이런 와중에 어른이 되어갔다. 노애와 어머니 조태후의 행각을 나는 알아챘다.
나는 신하를 시켜 노애와 어머니 조태후의 뒷조사를 했다. 노애는 어머니와의 불륜이 드러나자 발악하며 함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반란을 진압했다. 나는 노애와 어머니 조태후가 간통해서 낳은 아이들을 자루에 넣고 때려죽였다. 그리고 노애를 잡아 와 사지를 찢는 거열형에 처한 뒤 삼족을 멸했다. 그리고 어머니 조태후는 유폐시켰다. 그러자 신하들의 간곡하게 어머니 조태후를 사면시켜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를 다시 왕궁으로 모셔 왔다. 나는 이 사건의 주동자인 여불위에게 책임을 물어 처단하려고 했으나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많아 벼슬을 빼앗고 유배를 보내고 말았다. 내가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었다는 걸 진작 알았지만, 소문에 휘둘린 내가 아니었다. 나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던 여불위는 일 년 후 자살하고 말았다.
나는 여불위와 노애, 그리고 어머니 조태후까지 왕권을 노리고 위협하던 세력들을 모두 꺾고 22살에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마침내 친정 체제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명실공히 나의 천하가 이루어졌다. 승상과 어사대부 그리고 태위, 9경제도를 확립해 이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조정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나는 권력은 냉혹하고 잔인하게 써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쓸데없는 명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추구했다. 인재를 소중히 여겨 평등하게 등용하고 외국의 인재들도 우대해 주었다. 능력만 있으면 신분과 출신지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해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했다.
내 꿈은 천하통일이었다. 나는 통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군사제도를 개선했다. 병장기의 규격은 통일하고 부대와 지휘관도 수직적으로 개편하고 많은 병사들도 징병해 무기와 장비도 새롭게 개발했다. 구태의연한 병농일치제의 춘추시대를 답습하지 않고 전쟁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군인집단을 만들었다. 나의 말 한마디면 목숨걸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 백만의 병사들을 만들어 통일전쟁 준비를 했다. 나는 하루에 공문서를 120근씩 처리하지 않으면 못 견디어 신하들을 매섭게 다그치기도 했다.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나는 이 모든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권력은 언론에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각종 서적을 불태우고 나를 비방하는 수백 명의 유생들을 생매장하여 권력을 강화했다. 나는 전국에 있는 7개국 중 세력이 가장 약했던 소한부터 공격해 점령하고 한나라 왕을 포로로 잡아 와 한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연나라 왕을 사로잡아오면서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초나라와 마지막 남은 제나라까지 멸망시켰다. 7개국을 멸망시키고 우리 진나라로 모두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내 나이 40세에 마침내 천하통일을 선포하고 전설의 성군인 ‘삼황오제’에서 따와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다.
천하를 통일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 나는 어느 봄날 낭아산으로 갔다. 낭아산의 풍경이 어찌나 맘에 드는지 석 달 정도 머물렀는데 갑자기 섬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도에 통달한 서복이 와서 내가 보았던 섬은 전설 속의 봉래산이라고 하며 자기가 봉래산으로 가서 불로불사약을 구해오겠노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하고 떠나는 배에 수많은 보물과 소년소녀 삼천 명을 실어서 보냈다. 그러나 서복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천하를 둘러보고자 전국 순행을 여러 차례 단행했다. 그러나 제5차 순행 도중에 병에 걸리고 말았는데 회복할 수 없었다. 나는 49세로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