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창호, 이하 ‘인권위’)는 2025년 8월 25일 다음과 같이 의견표명 및 권고하였다. 국회의장에게, “수사기관 등이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이용자정보를 취득하는 경우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전기통신사업법」의 통신이용자정보에서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정보를 제한하며, 취득 정보의 폐기 및 목적 외 사용금지, 비밀유지의무 등 사후관리에 관한 규정을 일반규정으로 마련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 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 등에 제공한 통신이용자정보 현황을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고, 제도의 체계적 운영을 위해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제도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 수립 방안을 마련할 것” 권고하고 국방부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에게,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수사기관 등의 통신이용자정보 요청 시 기관 자체적으로 사전 심사를 거친 후 최소한의 정보만을 요청하도록 내부통제 절차를 마련할 것” 을 권고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의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제도는 수사기관 등이 재판이나 수사 등을 위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또는 해지일 등 ‘통신이용자정보’의 제출을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가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써, 1978년 「(구)전기통신법」제5조 제2항에 규정된 공중통신업무에 관한 서류의 열람 및 제출제도에서 시작되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보급되지 않았던 1978년의 기술적·사회적 환경에서 마련된 제도의 틀이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이룬 오늘날에까지 유지됨에 따라 수사기관 등이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통신이용자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
최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고도화된 정보처리 기술이 수사기관에 도입되면서, 통신이용자정보가 단지 수동적으로 열람되는 것을 넘어 알고리즘에 의해 대규모로 수집·분석·예측될 수 있는 새로운 위험성을 수반하게 되었다.
또한, 정보의 전산처리 과정을 통해 개인 관련 정보는 무제한으로 저장되어 언제든 다시 불러올 수 있고,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 통신이용자정보가 통신 메타데이터와 결합되거나 분석될 경우 개인의 행동 패턴, 사회적 관계, 정치 성향 등 민감한 정보로 확대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수사기관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범죄 수사를 위해 범죄 피의자 등에 대한 기본적인 신상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사기관 등이 범죄와 무관한 사람들의 인적사항까지 수집 대상에 포함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고 개인정보 수집의 목적과 대상자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편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최종견해를 통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영장 없이 이용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법률 개정을 권고하였고, 2017년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우리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또한 2019년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호관도 대한민국에서 통신 감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며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인권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통신이용자정보 제공 조항을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이관하여 통신사실확인자료와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제도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식 등을 통해, 수사기관 등이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이용자정보를 취득하는 경우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아울러, 법원의 허가 절차 마련 전이라도 국민의 기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정보 제공 제한, ▲취득정보의 폐기, ▲목적외 사용금지, ▲비밀유지의무, ▲적극적 정보공개, ▲가이드라인 수립, ▲기관 자체 심사절차 마련 등 제도를 개선하여 공공의 안전보장 등 공익적 목적과 통신이용자의 권리보장 간의 균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2012년 이후 국회에 법원 허가 절차 도입 등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통신이용자정보 수집을 제한하려는 법률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된 바 있으나,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10년 넘게 통과되지 못하였다. 인권위는 제22대 국회에서 급격한 정보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과거 법제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됨으로써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