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병원에서 십수 년을 일했다. 수술을 하고, 처치를 하고,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를 끝내고 나면 '오늘도 내가 다 해냈다' 싶은 밤이 있다. 그런데 정말 내가 다 한 걸까.
우리는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말을 자랑처럼 여긴다. 남의 도움을 받아 이룬 일은 어쩐지 내 실력이 아닌 것 같다. 손을 벌리는 건 약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돌아보면 내 삶에서 중요한 문은 대부분 남이 열어줬다. 첫 책은 내 글을 눈여겨봐 준 누군가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강연 자리도 나를 불러준 사람이 있었기에 설 수 있었다. 지금 쓰는 이 칼럼도 지면을 내어준 편집자가 있어 존재한다.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 덕이다.
내 직업은 이 사실을 매일 눈앞에서 확인시켜 준다. 동물 환자는 스스로 '도와달라' 말하지 못한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짚어주지도 설명하지도 못한 채, 제 생사를 온전히 남의 손에 맡긴다.
언젠가 손바닥만 한 새끼 웰시코기가 병원에 왔다. 파보바이러스 장염이었다. 어린 강아지에겐 치명적인 병이다. 며칠간 수혈을 하고 밤새 입원 처치를 이어갔다. 결국 살아났다. 하지만 나 혼자 살린 게 아니다. 처치를 도와준 직원, 포기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곁을 지킨 보호자, 그리고 끝까지 버텨준 작은 강아지 자신. 그 여린 생명은 자기가 얼마나 많은 손에 안겨 여기까지 왔는지 끝내 모를 것이다.
사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내가 이룬 줄 아는 많은 것들이 실은 수많은 손에 안겨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진짜 실력자는 자기 한계를 안다. 혼자 다 짊어지려는 사람보다 필요한 순간에 "도와달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멀리 간다.
흥미로운 심리 현상이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다. 누군가에게 작은 부탁을 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더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움을 준 쪽은 '내가 이 사람을 그만큼 아꼈구나' 하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도움을 청하는 일은 상대에게 빚을 지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닫혀 있던 관계의 문을 여는 일이다.
그러니 언어를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 "나는 해냈다"에서 "우리는 함께 해냈다"로. 이 짧은 문장 하나만 바꿔도, 내 성취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움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그 작은 강아지는 건강하게 자라 포동포동한 성견이 되어 이따금 병원에 들렀다. 녀석이 올 때마다, 지쳐 있던 내게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살린 녀석이 나를 살린 셈이다. 받은 도움은 되돌아오고, 옮겨 붙고, 그렇게 돌고 돈다. 오늘 내가 잡은 손이 언젠가 나를 잡아줄 손이 된다.
당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취를 하나 떠올려보라. 그 자리에 정말 당신 혼자였는가. 분명 보이지 않는 손들이 곁에 있었을 것이다. 그 손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건 내 공을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에 안겨 여기까지 왔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혼자 이룬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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