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쳐라.”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지”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각자가 제 운명의 주인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1954 - )의 아래와 같은 말도 유비무환의 교훈을 준다.
“내 인생에서 행운이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많은 은총과 많은 축복과 많은 신적(神的)인 디자인 설계가 있었을 뿐이나 나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나에게는 행운이란 준비상태로 기회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기회의 순간을 맞을 준비 없이는 행운이란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손, 그리고 또 하나의 손, 내 손보다 크고 내 힘보다 큰 힘이 있었기에 나 자신도 모르는 방식으로 내가 준비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나와 모든 사람에게 이 진실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 매사가 우리를 앞으로 닥칠 순간에 대비시켜 준다는 거다.”
자, 이제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공화당 경선에서 거의 모든 사람의 예상외로 16명의 쟁쟁한 미국 공화당 정치인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최종 지명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11월 본선에서도 또한 모든 사람들의 예상 밖으로 민주당의 막강한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당선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의 다음과 같은 말도 좀 음미해 보자.
“당신은 ‘행운이란 기회가 준비를 만날 때 찾아온다’는 말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난 이 말에 동의한다. 누구는 운이 좋다고 마치 자신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강조하듯이 사람들이 말하는 걸 자주 들었다. 내가 생각건대 사실은 불평하는 사람들이 운이 좋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는 거다. 당신의 운이 좋아지려면 큰일을 준비하시라. 그렇다. 영화를 보는 게 더 재미있겠지만 당신이 영화산업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면 시간 낭비다. 당신의 재능을 개발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행운을 가져온다. 성공에 대해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는 것이 당신의 보람 있는 인생코스를 밟는 지름길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해 블로그 등 각종 매체가 있어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부정적인 데 소모하고 있는데, 불균형이 강조되고, 이런 부정적인 포커스는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 보기도 전에 그 문제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진이 다 빠지지 않도록 할 일이다. 그러는 건 미친 짓이다. 긍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관찰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정신력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부정적으로 되기는 쉽고 안일하다. 당신 정신력의 포커스를 적극적인 해결책에 맞추라. 그러면 이런 네 정신상태가 네 행운을 창조할 것이다.”
기어도 보고, 걸어도 보고, 날아도 보고,
온갖 아름다운 풀, 꽃, 산과 들, 강과 바다도 보고,
갖가지 시고 맵고 짜고 달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새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천둥소리, 자연의 소리 들어보고,
가슴에서 샘솟는 시와 노래지어 읊고 부르기도 듣기도 해보고,
기쁨과 아픔과 슬픔의 사랑도, 그 좋은 섹스도 할 만큼 해보고,
영고성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본다는 것,
그리고 끝으로 죽어도 본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 각자 모두
사랑의 무지개배를 타고 망망대해 코스모스바다로
황홀하게 항해해 보고 하늘하늘 코스모스하늘로 날아본다는 것
이 얼마나 기막힐 기적의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우리 삶이 우주항해이고 우주비행이며 우주여행의 우주 놀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놀이를 더 좀 신나고 재밌게 해볼 수 있을까? 길잡이로 옛날이야기 하나 해보리라. 유방을 도와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장량의 이야기다.
진시황은 중국을 제패하여 통일제국을 이룩했다. 멸망한 나라의 무관 귀족 출신이었든 젊은 장량은 진시황을 암살할 계획을 가지고 자기 나라의 재건을 도모한다. 한때 장량은 진시황의 마차를 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한 시골에서 다리에 걸터앉아 있는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장량을 보고 신발이 다리 아래로 떨어졌으니 주워 달란다. 장량이 힘들게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워 오자 노인은 이제 신발을 신겨 달란다. 신발을 신겨 주자 노인은 신겨 준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다시 주워오란다.
반복되는 노인 부탁에 장량은 화가 났지만, 여러 번이나 참으며 노인의 신발을 주워 오자, 노인은 선물을 줄 터이니 다음날 보자고 했다. 다음날 장량이 다리에 나오자 노인이 버럭 화를 낸다. 젊은 놈이 노인보다 미리 나와 있어야지 하면서 내일 다시 오라 한다. 다음 날 다시 일찍 그 다리에 가보니, 노인이 또 먼저 와 있었다. 다시 늦게 왔다고 야단치며 다음날 다시 나오라고 한다. 장량은 그날 아예 집에 가지 않고 그 다리에서 밤을 새우고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날 해가 지도록 노인이 나타나지 않아 떠나려고 일어날 즈음 나타난 노인이 책 한 권을 건네주면서 “천하통일을 하려면 이걸 미리 꼭 읽고 준비하라” 말하고는 사라진다.
장량은 자신의 마음을 읽은 노인의 독심술(讀心術)에 감탄하며 이 책을 수도 없이 여러 번 읽고 또 읽은 후 유방과 한신을 만나 함께 한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노인이 장량에게 건네준 책이 바로 ‘소서(素書)’라는 비서로 정신수양과 지혜에 관한 중국 고서 중 하나이다. 이 소서를 탐독한 장량은 물고기를 잡기 전에 먼저 그물을 짰다고 한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는 “일이 없을 때는 항상 일 있을 때 할 것을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일없을 때의 심경을 가질지니, 만일 일이 없을 때 일 있을 때의 준비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 창황전도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일 있을 때 일없을 때의 심경을 가지지 못한다면 마침내 판국에 얽매인 사람이 되고 마나니라.”라고 말했다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히말라야 설산에는 야명조(夜鳴鳥)라는 새가 있는데 ‘밤에는 집을 짓겠다고 우는 새’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새는 몸집이 크고 추위를 잘 타는데 밤이면 추워 울면서 내일 날이 밝으면 집을 짓겠다고 결심하지만 아침이 되어 기온이 따뜻해지면 놀러 다니다가 밤이 되면 다시 내일은 반드시 꼭 둥지를 지어야지 하며 다시 결심하면서 운다고 한다.
우리 독일계 미국 시인 찰스 부코우스키(1920-1994)의 시 한 편 음미해보리라.
무리의 천재성
인간에겐 언제나
군대가 필요로 하는
배반과 증오와 폭력과 부조리가 있지
살인을 제일 많이 하는 건 살인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자들이고
제일 심하게 미워하는 건 가장 큰 목소리로
사랑을 외치는 자들이며
전쟁을 제일 잘하는 건
평화를 주창하는 자들이지
신(神)을 전파하는 자들이야말로
신이 필요하고
평화를 부르짖는 자들이야말로
평화를 모르며
평화를 부르짖는 자들이야말로
사랑을 모르지
경계하라 설교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안다는 자들을
경계하라 늘 독서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빈곤을 싫어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칭찬을 받으려고
먼저 칭찬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제가 모르는 게 두려워서
남 비난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세상 무리들을 찾는 자들을
경계하라 보통 남자와 보통 여자를
경계하라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사랑은 보통이기에
보통을 찾지
그러나 그들의 증오엔
천재성이 있어
널 죽이고 아무라도 죽일 수 있지
고독을 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해
자신들과 다른 것은
뭣이든 다 파괴하려는 자들을
예술을 창조할 수 없어
예술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은
제 잘못이 아니고
모든 게 세상 탓이고
제 사랑이 부족한 건 깨닫지 못한 채
네 사랑이 불충분하다고 믿으면서
널 미워하느라
그들의 미움이 완전히 지독해지지
빛나는 다이아몬드같이
칼날같이
산 같이
호랑이같이
독초같이
그들 최상의 예술이지
“죽음이 찾아오면 그대는 그에게 무엇을 대접하겠는가?”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란다. 그래서인지 웰빙이니 웰다잉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잘 죽기 위해선 먼저 잘 살아야 할 일 아닌가. 그럼 잘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언제 어디서든 닥칠 죽음을 항상 의식하면서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리라. 잘 알려진 장자의 외편(外篇)에 나오는 얘기가 있다. 사람들이 활쏘기를 하는데 질그릇을 걸고 내기하니까 다들 잘 맞추더니 다음엔 값이 좀 더 나가는 띠쇠를 걸자 명중률이 떨어지다가 마지막으로 황금을 걸자 화살들이 모두 빗나가더란 일화 말이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장편소설 ‘죽음의 중지’의 첫 장면이다. 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칼 작가 주제 사마라구(1922-2010)가 쓴 소설이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노화는 진행되지만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갈등을 그리는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된 세상은 천국이 아닌 지옥임을 사실적으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이상(1910-1937)이 그랬듯이 1960~1970년대의 미국을 겁 없이 제멋대로 살았던 저항운동가요 반항아였던 애버트 호프만(1936-1989)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지자 그와 가까웠던 친구들은 그가 나이 든 자신이 싫고, 활력을 잃어버린 청년세대가 못마땅했으며, 보수로 회귀한 1980년대를 살아내기 힘들어 세상을 일찍 하직했을 거라고 했다.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1910-1986)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상의 이번 죽음은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고 했다지 않나.
모차르트가 1787년 4월 4일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우리 한 번 같이 읽어보자. 이 편지글은 1864년 출간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서한집에서 옮긴 것이다.
“지난번 편지에 안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는 이 순간 몹시 놀라고 걱정됩니다. 내가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는 버릇이 있지만, 이번만은 어서 빨리 아버지께서 쾌차하신다는 보고를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희망합니다. 그렇지만 잘 좀 생각해 볼 때 죽음은 우리 삶의 진짜 행선지임으로 나는 진작부터 우리 인간이 믿을 수 있는 이 좋은 친구와 친하게 지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놀랍거나 무섭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가장 평화롭고 큰 위안이 되며(내 말을 이해하시겠죠) 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지복감(至福感)의 열쇠임을 내가 깨달아 알 기회를 주신 나의 하늘 아버지에게 감사해왔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직 젊지만,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 안 하는 때가 없습니다. 내일 새벽이 오기 전에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는지 모른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나를 아는 아무도 나를 접촉해 사귀면서 내가 한 번도 침울해한 적이 있더라고 말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지요. 이처럼 내가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행복한 성정을 갖게 된 데 대해 나는 날마다 나의 창조신께 감사하면서 모든 세상 사람들과 피조물들이 다 나처럼 늘 행복하게 삶을 즐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수도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고 했고,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 필사즉생(必死即生) 필생즉사(必生即死)’도 있지 않은가. 우리 상상 좀 해보자.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늙지 않고 영원히 젊다고. 그럼 사는 것도 젊은 것도 아니리라. 그래서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만(1819-1892) 도 그의 시 ‘나 자신의 노래’에서 이렇게 읊었으리.
“죽는다는 것은 그 어느 누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더 다행스러운 일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