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낙화

이순영

우리는 알고 있을까. 가야 할 때를 알고 있을까. 자연은 어김없이 가야 할 때를 알려주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다. 하늘을 나는 새도 가야 할 때를 알고 짐승들도 가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하물며 꽃도 가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인간인 우리만 가야 할 때를 모르고 있다.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다. 욕심으로 꽉 차 있으니까 가야 할 때에 가고 싶지 않다. 더 살고 싶고 더 곁에 있고 싶고 어떻게 해서든 악착같이 붙잡고 놓질 않는다, 인간의 이기심은 정말 우주 최강일지 모른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읽으면 우리의 이기심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학교 다닐 때 외우고 또 외우며 그 뜻을 헤아리려고 노력했던 시다. 지금 다시 읽으니 젊은 시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인은 이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고독에 싸여 있었을까.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고 시인은 자기 고백을 한다. 우린 늙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데 말이다. 그 많은 화장품이 그걸 증명한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성형외과에는 늙음을 파 버리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바글바글하다. 나의 청춘이 꽃답게 죽게 할 이유가 없어진 세상이다. 

 

순리보다 역리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늙어 가는 게 정상이다. 정상에 올라가면 내려가는 건 당연하다. 이 우주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흐르는 것이 순리고 가야 하는 것이 진리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끝이 있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인생을 허비하는지 모른다. 니체는 ‘삶의 긍정’을 말하며 존재의 소멸조차도 삶의 일부로 긍정해야 한다고 했다. 위대한 철학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라고 이형기 시인은 말하지만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이지 못해도 우리는 가야 한다. 순간마다 삶의 모순을 느끼고, 순간마다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더러워서 죽겠고, 미워서 못 살겠으며 스트레스받아 미치겠는 삶을 순간마다 느끼며 살고 있다. 집착만 놓아버리면 세상 편할 텐데 그놈의 집착이 문제다. 잘 살고 싶은 집착, 사랑하고 싶은 집착,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물질 잔뜩 갖고 싶은 집착이 가야 할 때를 놓치게 만든다. 

 

맞다. 우리는 머무는 법만 배웠지 떠나는 법은 못 배웠다. 젊음을 붙잡는 법만 배웠고 권력을 붙잡는 법만 배웠으며 사랑을 붙잡는 법만 배우며 살았다. 이형기 시인은 ‘낙화’를 통해 이제 좀 놓아버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붙잡고 앉아서 천년만년 살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하찮은 일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도 마음으로는 다 안다. 알지만 안된다. 그게 인간이라고 자조하면서 살아간다. ‘낙화’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면 그 뜻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 번 더 그 뜻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5.09.25 09:48 수정 2025.09.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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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