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바이오 필리아와 헤테로토피아

김관식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인간의 마음』에서 바이오필리아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이 말은 “생명과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필리아를 “식물이나 사상이나 혹은 사회단체든 그 모든 것의 성장이 더욱 이루어지게 하려는 바람”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의 조화와 연결을 추구하며, 자연적인 환경에서 나오는 생명력과 균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더 진화해 왔다고 한다.

 

따라서 바이오필리아는 사람의 서식처 선택 경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사람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환경, 특히 사바나 같은 초원이나 공원 같은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야생동물들처럼 대양, 호수, 강 그리고 시내 같은 물가에 있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거의 절대적이고 일관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사람이 죽을 때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귀소본능도 본능적인 바이오필리아 심리인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취재하여 “나는 자연인다.”라든가 자연 현장 취재 방영 프로그램 같은 사례에서 바이오필리아의 사회심리가 일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하는 등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했다. 그 결과, 도시는 주택난, 교통난, 급수난, 각종 공해, 재해, 공공시설 부족에 의한 생활 환경의 악화, 도시 특유의 범죄 등 각종 문제를 초래했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원초적인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바이오필리아의 심리가 절실해지고, 삭막한 도시 공간에서 관념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를 찾아가려고 하는 심리가 작동되기 마련이다.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고안한 장소성, 또는 공간개념인데, 라틴어의 ‘hétéros’(다른)와 그리스어 ‘topos/topie’(공간)가 결합된 다른 공간을 의미하는 말로 유토피아(utopie)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 즉 장소 바깥의 공간, 이질적 공간 등으로 명명되는 공간이다. 이처럼 헤테로토피아가 기존 공간을 전복하고 해체함으로써 비일상적인 특별한 공간으로 자연과 분리되어 인공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헤테로피아를 지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무분별하게 자연환경을 훼손해 왔다. 따라서 그로 인해 자연의 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과 멀어진 사람들은 자연과 분리됨으로 인한 심리적으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실증적인 사례가 바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또는 자연을 찾아가는 현장 취재 프로 등 자연과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였고,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예를 들면, 낚시를 취미활동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조황정보를 알려주는 낚시방송 채널에서는 강과 호수, 바다 등 헤테로피아를 찾아 실제로 낚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록 가상세계이지만 자연 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환상을 실감한다. 즉 바이오필리아의 가상채널을 통해 자연 현장의 사람들과의 일체감 형성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며 대리만족한다. 

 

이러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즐겨 시청하기 때문에 자주 방영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런 헤테로토피아나 바이오필리아 관련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은 까닭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까닭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시청률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과 멀어져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모습을 시청함으로써 자연과 함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품에 안기려는 사회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즉 자연과 일체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봄으로써 대리체험을 통해 심리적 위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과 가까이 가고 싶은 심리적인 열망이 자연 속에서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으로 대체됨으로써 심리적인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국마다 자연을 찾아가지 않고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착각을 유발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성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분리된 도시인들은 안방에서 바이오필리아의 직접적인 현장을 시청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한다. 그 때문에 바아오필리아 관련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아가고, 그런 이유로 방송 매체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꾸준히 방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소설가인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 Wilson)이 1984년 그의 저서 『바이오필리아(Biophilia)』가 나온 뒤부터 대중에게 바이오필리아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자연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자연과의 연결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낱말은 생명(Bio-)과 좋아함(-philia)의 합성어로 생물의 다양성(Biodiversity)을 보전하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일환으로 탄생했는데,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텔레비전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각종 생활용품의 광고 등에서 바아오필리아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물리적 공간으로 자리하는 실제적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일상 공간과는 다른 차원의 긴장을 이끌어 내는 심미적인 공간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헤테로토피아는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유되는 공간이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거울 공간에 비유하였다. 거울 속 공간은 장소가 없기에 유토피아로 볼 수 있지만, 거울 자체는 비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며 실체 없는 공간에서 특정 대상의 가시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헤테로토피아에 해당된다. 현실 세계를 가시적인 모순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거울은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심리적인 압박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각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헤테로토피아를 찾게 되고, 가상세계 속에서 바이오필리아를 동경하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분노, 시기, 질투 등은 자신의 콤플렉스나 남에 대한 사랑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강해서 나오는 마음의 병이다. 마음의 병은 몸을 병들게 한다. 각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마음의 건강을 위해 헤테로토피아를 찾아가고 바아오필리아를 동경하며, 하루하루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웃과 즐겁게 살아가는 지혜는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불교의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생각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어나가시길 바란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5.09.29 10:07 수정 2025.09.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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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