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역사전쟁의 시대, 공공역사로 향하는 길

이진서

한국 사회에서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투쟁을 매개하는 '기억의 장(場)'이다. 특히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은 역사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반도사관(半島史觀)은 해방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잔존했고, 분단 체제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기표들과 결합하면서 오늘날까지 한국 역사교육의 기저를 잠식해 왔다. 

 

역사가 권력에 의해 재단될 때, 그것은 과거의 ‘사실(fact)’이 아니라 권력의 선택과 배제가 작동하는 담론적 구성물로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은 언제나 논쟁적이었으며, 시민적 성찰을 독려하기보다는 현실 권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로 전락했다.

 

전범국가였던 독일의 행로는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들은 나치의 범죄를 은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과거의 폭력과 직면하도록 사회적·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구축했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도시 곳곳에 박힌 ‘스톨퍼슈타인(Stolperstein)’ 프로젝트는 그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구체적 실천이다. 

 

이러한 기억의 제도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과거의 책임을 현재적 윤리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독일은 과거를 ‘극복’하기보다 ‘기억’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규범적 기반을 세웠다. 집단적 기억을 윤리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역대 권력자들은 정반대의 길로 향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기억을 은폐하거나 폭력적으로 재구성했다. 친일의 역사, 국가 폭력, 민주화 과정의 상흔은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가히 역사전쟁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극단적인 대립은 한국 사회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다음의 두 가지 과제와 연동되어 있다. 

 

첫째, 해방 후 국가수립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식민사관과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 놓여 있는 우리가 진정 복원해야 하는 우리의 역사가 고작 식민주의사관인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백성들의 열망과 항일독립투쟁가들의 사유와 실천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낸 직접적인 토대이다. 

 

둘째, 역사교육을 소위 전문가들 손에만 맡겨놓지 말고 '그들만의 리그'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위 공공역사(public history)의 시작이다. 지역사 구술 기록, 학생들의 탐구 프로젝트, 생활 속 기념 실천 등을 비롯하여 역사를 교실 안에 가두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공적 자산으로 제도화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공공역사는 이미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역사 자체가 특정 학문 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집합적 기억의 장이 되고 있다. 역사학자나 연구자는 이제, 해석의 독점자가 아니라 시민과 기억을 매개하는 촉매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민주주의가 존립하기 위한 필수적이고도 규범적인 조건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기억의 부재와 무관심 속에서 악이 반복된다는 경고였다. 

 

우리가 기억을 회피하는 순간, 악은 다시 평범한 얼굴로 돌아올 것이다. 역사교육을 공동체의 자기 정체성과 미래를 성찰하는 윤리적 실천이 되도록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9.30 09:37 수정 2025.09.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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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