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옷 수선

김태식

바뀌는 계절에 맞춰 옷을 입다 보면 유행도 지났고 낡아도 애착이 가는 옷 한 벌이 간혹 있다. 18년 전 유명 남자 골프 선수가 선전했던 제법 값비싼 겨울 외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 그렇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현직에 있을 때의 기억이 나서 좋다. 그 시절 겨울에 미국 일본 중국으로 출장을 다닐 때의 친밀감이 떠 오르기도 한다. 내 인생의 전성기 시절 단벌 신사처럼 자주 입고 다녔던 옷이라 정이 들어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소매 끝은 금세라도 구멍이 날 것처럼 닳아 있고 색깔은 바래 다른 옷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가 몇 번씩 버리려 했지만 나는 제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아내와 의논 끝에 정이 들어 버리지 못한다면 외출용으로는 입지 말고 겨울철 새벽 운동용으로만 입기로 했다. 앞으로 수선할 일이 생기면 버리기로 약속도 했다.

 

 그런데 작년 겨울 그 약속을 깜빡 잊은 채 그 옷을 입고 출근을 했는데 모자를 고정시키는 지퍼가 떨어져 있어 너덜너덜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무실 주위에 있는 옷 수선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아내가 수선을 한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줄 알면서도.

 

수선할 옷을 따로 들고 온 것도 아니고 입고 온 옷을 벗어 수선을 부탁하는 나를 아래위를 훑어 보고 옷을 살피던 옷 수선집 여주인이 말했다.

 

“수선비가 아깝겠는데요”

 

마치 헌 옷을 주워 입으려면 제대로 된 입을만한 옷을 주워 입지 않고 안 됐다는 눈치였다. 그래도 수선비용을 묻지도 않고 수선을 고집하는 나의 요청을 받아들인 여주인은 재봉틀을 돌리더니 말끔하게 고쳐 주었다. 얼마냐고 묻는 나를 다시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당신이 수선비가 있기라도 하겠나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받을 수는 없고 천 원만 주세요”

 

여주인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옷을 수선했다는 말을 하니 노발대발했음은 물론이고 천 원을 주고 수선을 했다는 말을 더욱 믿으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슨 재주로 천 원을 주고 수선을 했다고 해요. 요즈음 옷 수선집에서 재봉틀을 한 번 돌리면 최소 5천 원이 기본이란다. 천 원의 내력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하고 난 뒤 아내는 말했다. 

 

“앞으로 옷 수선할 일이 있으면 당신에게 부탁해야겠네요”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5.09.30 10:00 수정 2025.09.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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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