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 정약용, <홀로 웃다> 부분
어제 한 젊은 시인 지망생과 술잔을 나누게 되었다. 나는 ‘젊음’을 만나는 기쁨으로 설레었다. 하지만 빈 술병이 늘어날수록 나는 절망했다. 그녀는 반문했다.
“시를 쓰는데, 왜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해요?”
나는 해맑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에게서는 어떤 시가 나올까?’ 인터넷에 널려 있는 감상적(感傷的, sentimental)인 시들이 떠올랐다. 감상적인 시는 감성이 충만하지 못한,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시인에게서 나오는 시다. 그런 시에는 싸구려 눈물이 넘쳐흐른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감정 하나하나에 충실해야 한다. 따라서 시를 쓰는 사람은 이 세상의 가시에 수없이 할퀴어진다. ‘시대에 대해서 상심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정약용 시인은 절망한다.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하지만 홀로 웃는다.
이때 시가 나온다. 30대 초반의 시인 지망생의 해맑은 얼굴, 왜 그녀의 얼굴에는 세파(世波)가 할퀴고 가지 않았나?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언어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한다.
아버지의 세계는 이 세상이다. 그녀는 이 세상이 두려워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녀는 성장하지 않는 아기다. 아기의 옹알거림은 최고의 시이지만, 그녀의 옹알거림은 시가 될 수 없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