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시골 동네 몇 가구를 제외한 대다수는 가난한 살림살이었다. 그 이유는 도시와 농촌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인 한국전쟁으로 인한 영향이 컸고, 그래서 경제적 기반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생활고의 어려움 속 가난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우연히 티브이를 시청하던 중 차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순간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어느 나라에서는 족쇄 같은 목걸이를 찬 어린 소녀들은 돈으로 사 갈 수 있다는 징표라는 것이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학교는 갈 수 없고,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소녀는 8살에 팔려? 가서 밥하고, 살림하고, 아이를 낳고, 어떤 소녀는 가축 몇 마리에 팔려가 60세 된 남편의 병시중을 들면서 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장식품의 목걸이가 아닌 빈곤을 목에 두른‘가난’ 때문이었다.
우린 살아가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잠든 후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어떤 사물이나 풍경 등이 눈앞을 무심코 스쳐 지나간 듯하고, 누군가는 우습게 바라보는 시선과 조롱하는 듯 눈을 흘기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상념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수치심이나 부끄러움 또는 특히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일상적으로 오가는 언어 사용의 높낮이와 오해와 이해 사이, 세대 간의 차이, 특히 부와 빈곤의 차별 등 수없이 많다.
이러한 삶 속에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고양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안개마저도 비애로 다가온다. 낮에는 마천루의 그림자를 밟고, 밤에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유혹하는 도시에서 가난한 자는 그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자욱한 안개뿐이다. 칼 샌드버그의 “안개”의 시를 보자.
작은 고양이의 걸음으로
안개는 온다.
조용히 앉아
항구와 도시를
허리 굽혀 바라본 뒤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
그의 관조적 시선의 창작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어쩜, 시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짐꾼, 벽돌공, 기타 노동자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안개와 고양이 같은 권력자들이 삼켜버린 도시를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사는 빈곤한 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없이 사는 생활의 모습도 굳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 그 자체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게 아니고, 또한 엄청난 권력과 부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는 비웃음과 야릇한 미소, 내리까는 눈동자의 시선들이다. 이러한 시선들은 가난한 자의 영혼까지 피 멍들게 해서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과연 우리의 속담처럼 ‘가난이 죄일까?’ 물론 가난 때문에 죄를 짓는 경우가 있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 빵을 훔쳐 먹고 19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나온다. 그 후 주교를 만나 숙식의 도움을 받는 도중 성당의 은촛대를 훔쳐서 또 경찰에 붙잡힌다. 이러한 그에게 미리엘 주교는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물건을 장발장에게 주면서 관용을 베푼다. 그 후 이름을 마들렌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
며칠 전 화물차 기사가 물류회사 사무실 냉장고에서 400원짜리 초코파이 하나와 650원짜리 커스터드, 도합, 1050원에 상당한 과자를 꺼내먹었다는 이유로 물류회사 측에서 절도 혐의로 고소했고. 그 결과 1심에서 절도죄의 유죄가 인정되어 5만 원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저 높고 높은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설산의 수행을 한 부처, 버리고 떠나기의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 등, 이들은 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의 지향점과는 분명 다르다. 뜬구름 잡는다고 해야 할까? 온갖 부정이 난무하고, 치졸한 수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그들 앞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최대의 실언일까? 이들 앞에선 그 어떤 수식어도 한낱 부질없는 소음일 뿐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기는 공자의 글을 보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논어> ‘술이(述而) 편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