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다녀온 티베트의 성도(城都) 라싸에 있는 세라사원(色拉寺)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엘리트 승려들이 순수한 불교 연구에만 정진하는 사원이다.
한때 5개의 교육기관에 5,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거대한 사원은 현재 3개 대학에 300명 정도의 승려만 남았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사원 대부분이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할 당시 상당수의 승려가 함께 망명의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라사원은 법당이나 불상보다는 오히려 승려들의 자연스러운 토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세라 제(Sera Je Dratsang) 앞마당이 '최라’(Chora)로 불리는 그 유명한 교리문답 토론장이다.
보통 오후 3시부터 약 1시간 정도 일정한 화두에 대해 경전을 이용한 문답 수행방식으로 열리는데, 얼핏 보면 질서가 없고 제 주장만 난무하는 어지러운 '아사리판(阿闍梨判)' 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처럼 독특한 세라사원의 교리문답 방식은 오늘날 티베트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원래 '아사리阿闍梨)'는 출가자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계율과 의식에 밝고 덕이 높은 스님을 말한다. 덕망 높은 '아사리'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서 함께 의견을 개진하는데, 격론을 벌이기도 하여 '아사리'들이 모인 장소가 자칫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일 수 있는 점이 부각되어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이라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났다.

비슷한 불교 용어로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있다. ‘야단(野壇)’은 ‘야외에 세운 단’을,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를 의미한다. 석가께서 성장하여 각 지역을 순회하시면서 불법(佛法)을 전파할때 최대로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할 때였다고 한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다 보니 질서가 없고 어수선한 모습이 되었는데 이처럼 시끌벅적한 상태를 이른 말을 의미한다.
국민의 ‘희망’이 되어야 할 우리 정치가 ‘근심’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권력투쟁과 사리사욕에만 치우친 막판정치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번 추석 연휴 때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정치판을 아사리판, 야단법석을 넘어 아수라장(阿修羅場)이라고 비난하는 분위기다. 제발 바라건대 우리 정치인들은 대오각성하여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과 민생을 먼저 챙기는 아사리판과 야단법석의 시끌벅적한 장(場)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