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명작들을 보면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도 사랑이다. 지구상에 생명체는 자기 종을 남기기 위해 본능적으로 성행위를 한다. 식물이나 동물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기 증식으로 위한 본능적인 행위를 통해 대를 잇는다.
다시 말해서 식물은 수술과 암술이 꽃가루를 통해 수분을 하고 동물은 수컷과 암컷이 교미로 자가 증식을 한다. 식물은 종류에 따라 같은 그루 안에 암술과 수술이 있어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떨어지는 자가수분과 같은 종의 다른 그룹의 수꽃 꽃가루가 벌과 나비, 바람, 물 등의 도움을 받아 암그루에 옮겨붙은 타가수분으로 대를 잇는다.
반면 동물은 발정기에 수컷과 암컷이 서로 만나 교미를 거쳐 자가 증식하게 된다. 이처럼 동물은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치열한 힘겨누기를 벌이고, 그중 가장이 힘이 센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여 대를 잇는다.
사람도 이처럼 동물과 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성행위를 통해 종족을 번식하지만,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미고 사회적 공인 절차를 밟는다. 이 밖의 경우는 사회적인 도덕적인 제약이 따른다. 이처럼 사람의 경우,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본능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사회적인 규범과 인간으로서의 도리, 윤리, 도덕의 판단에 의해 본능적인 행동에 제동이 걸린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여 동물적인 본능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 바리고 동물적인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회적인 규범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는 철면피한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 남을 짓밟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법망을 피하여 재물을 많이 긁어모아 떵떵거리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사회적인 결속력이 약화된다. 높은 지위나 재물로 성욕을 치우려다가 성추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고, 재물을 더 모으기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아 늘 사회는 시끄럽다.
사람은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몸과 마음이 한데 있으면서도 따로 움직이기도 한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이 든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이 든다. 몸의 주인은 정신이다. 남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남을 짓밟고 본능대로 사는 사람은 악인이라 한다. 악인은 동물과 유사한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한다. 법의 제재를 받아 강제로 사회와 격리되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은 동물적인 본능대로 행동하는 정신이 병든 사람이다.
더불어 살아가기보다는 세상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가는 동물의 습성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3대 욕구로는 식욕, 성육, 수면욕이다. 그러나 이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병이 들고, 지나치게 넘쳐나도 병이 생긴다. 은 욕심이 지나치면 동물적인 본능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한다. 종교의 교리들은 동물적인 본능에 살지 말고 신성을 지향하며 살아가라고 가리킨다. 인간답게 살아가라고 권한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한다.
본능적인 사랑의 행위도 사랑의 범주로 생각한다. 그것을 기본으로 자기애, 가족, 이웃, 남녀 간의 사랑, 신, 자연, 나라, 학문, 예술 등 범위를 확장한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다양한 기원을 갖는 온갖 종류의 도취는 모두 예술을 발생시키는 힘을 갖추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원적인 성적 흥분의 도취가 특히 그러하다.”라고 예술 발생의 근원을 사랑으로 보았다. 그것은 사랑은 충동과 열정을 동반하며, 모든 충동과 열정은 생명을 생성시키는 작용인 성적 충동으로부터 발생한다. 이 성충동에 의한 성적 흥분의 도취가 바로 예술의 생리학적으로 도취의 원형이다. 이 생리학적 도취를 통해 삶을 변형시키는 예술적 힘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승화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여 명작을 탄생했다. 사랑을 주제로 하여 명작들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종교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단테의 『신곡』, 원수 집안끼리의 남녀 간의 아름답고 순수한 연애비극의 명작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의 자기 체험을 작품 속에 여과시킨 루소의 『고백』, 실연의 고뇌, 자살로 끝을 맺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살인범이 창녀 소냐의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자신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아버지의 외도와 가족의 불화를 그린 자전적 소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등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자를 비롯해서 예술가들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명작을 탄생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번민하고, 갈등하고 살다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헤겔은 『초기 저술』에서 사랑에 대해서 “사랑은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또는 망각하는 한에서 인간의 이성에 친숙한 경험적 도덕 원리”라고 했다. 사랑의 자기발견이란 타자 내의 어떤 것이 자신과 동일함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래서 동일한 자기가 타자 내에선 나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것으로 존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자기망각이다. 자기발견 또는 자기망각은 사랑의 가장 평범하고 일차적인 측면이다. 무르익은 사랑이 그러하듯이 자기망각은 더 나아가 자기희생으로 표출된다. 자기희생은 타자 내에 발견된 자기가 타자의 것으로 존립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자기라는 동일성을 유지하는 나의 존립은 타자의 존립을 통해 매개되어 있다. 타자와의 매개 없는, 비동일성의 계기 없는 순수한 동일자는 이 세계 나에게는 없다. 자연 사물과 달리 정신적 존재자는 타자와 관계 맺음에 있어 언제나 자기 관계 내에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집착한다. 자신의 성격과 습성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고 집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 내에서 사랑하며 살아간다. 본능적인 사랑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 신에 대한 사랑을 쫓아가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가 선택한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간다. 누구의 사랑이 더 좋고 나쁜가 하는 비교는 어리석다.
사후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면 사랑을 잘 실천하고 살다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인, 문학인이 살아있을 때 자신을 알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 어리석고 추한 짓일 것이다. 자신의 열정과 혼을 모두 쏟아서 작품을 완성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사랑하게 된다. 자신을 남기려고 하지 말고 사랑의 명작을 남겼을 때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지만, 빛을 보게 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된다. 추하게 기억해달라고 허욕을 부려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호화롭게 치장한 작품은 공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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