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홍수민 당선소감
안녕하십니까, 제7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자 홍수민입니다. 우선, 저의 글에 귀 기울여 주시고 이처럼 영예로운 상을 안겨주신 코스미안상 공모팀과 심사위원 여러분께 벅찬 기쁨과 함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두 편의 칼럼, 「멈춤과 깨어남: 디지털 시대, ‘불편함’의 인문학」과 「도시의 ‘뒤안길’: 사라지는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미학」을 통해 이러한 영광을 얻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이 글들을 통해 저는 효율성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불편함 속의 인간적인 가치와 도시 뒤안길에 숨겨진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탐색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쓰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제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든 것이 편리함과 효율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얻고 잃고 있는지, 그리고 디지털 문명이 과연 인간 본연의 역량까지 퇴화시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의 불편함'에 대한 칼럼에서 일상 속 작은 불편함들이 오히려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사유를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인내하고 때로는 비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내면의 강인함과 타인과의 진정한 교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 성찰은 곧 '도시의 뒤안길'에 대한 칼럼으로 이어져, 효율성만 추구하는 도시의 이면에 감춰진 장소들에 주목하게 했습니다. 오래된 것의 지혜와 공동체의 따뜻한 정(情)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하며, 효율과 새로움 너머의 가치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인문학은 제게 삶의 미학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단순히 과거를 탐구하는 것을 넘어, 급변하는 현재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묻고 사유를 확장하는 힘입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오래된 것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감각을 깨우고, 인간 고유의 회복 탄력성과 창의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인문학은 저에게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섬세한 안목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 글쓰기 여정에 가장 큰 영감은 언제나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 속에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풍경들, 현대인의 삶의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제 글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과 관찰이 저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와 글쓰기의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번 수상을 발판 삼아, 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인간적인 가치와 삶의 미학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탐구하는 글쓰기를 이어가겠습니다. 효율과 속도 너머에 존재하는 불편함 속의 지혜, 그리고 화려함 뒤에 숨겨진 오래된 것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찾아내어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쉼터와 깊은 울림을 주는 글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홍수민 칼럼] 멈춤과 깨어남: 디지털 시대, 불편함의 인문학
모든 것이 단 한 번의 터치로, 혹은 말 한마디로 해결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손안의 작은 유리판은 인류의 모든 지식을 담아내고, 단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과 소통하며, 배고픔과 외로움, 심지어는 막연한 궁금증조차 손쉽게 해소된다. ‘초연결’, ‘초효율’, ‘즉시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명제 아래, 우리는 삶의 모든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내고, 모든 틈새를 메워 불편함을 제거해야 할 원시적이고 불필요한 잔재로 여긴다. 인공지능이 삶의 복잡성을 대신 분석하고 예측하며, 디지털 문명은 인간의 노동과 고민을 최소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맹목적인 ‘불편함 지우기’의 속도전 속에, 우리는 혹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본질적인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쉼 없이 팽창하는 편리함의 풍선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 내면의 가장 섬세하고 단단한 근육들이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끔, 고장 난 엘리베이터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던 순간을 떠올린다. 평소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열 계단 남짓한 그 짧은 길에서,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벽돌의 투박한 질감, 잊었던 옆집 현관문 옆 시들어가는 작은 화분, 계단 창문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작은 '불편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미세한 결들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가상 세계에 갇혀, 나의 오감은 얼마나 많은 현실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을까. 짧지만 의도치 않은 '멈춤'과 '불편함'은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단절된 관계를 깨뜨리고, 마치 굳어 있던 감각들을 일깨우는 강력한 신호였다. 이는 단순히 불편함을 겪었다는 사실을 넘어, ‘감각의 재발견’이라는 인문학적 성찰로 나를 이끌었다.
현대 사회가 거세게 밀어붙이는 ‘불편함 제거’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본연의 역량들을 서서히 잠식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제 굳이 긴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고, 낯선 골목을 헤매다 길을 잃을 일도 극히 드물다. 인내심은 디지털의 즉각성에 침식되어 가고, 우연한 만남의 설렘은 미리 필터링된 정보와 알고리즘의 예측 속으로 사라진다.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계산해주는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무사히 데려다주지만, 길을 헤매며 낯선 이와 말문을 트고, 예상치 못한 풍경 속에서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불편함'을 경험할 기회를 영원히 앗아간다.
손으로 눌러 쓴 편지의 까슬거리는 종이 질감, 정성껏 고른 우표 한 장, 그리고 도착을 기다리는 며칠간의 애틋한 설렘은 이제 찰나의 이모티콘과 즉각적인 ‘읽음’ 확인 기능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유혹 속에서 우리의 오감과 정서가 얼마나 둔감해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재료를 직접 다듬고 오랜 시간 끓여낸 정성스러운 한 끼보다 간편식의 빠른 포만감을 택하는 습관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깊은 각인을 남긴다. 이러한 삶의 '불편'한 과정들 속에는 인내심, 성취감, 그리고 타인과의 진정한 의미의 교감과 같은, 기계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들이 숨어있었다. 우리는 효율을 좇는 동안, 스스로의 내면과 관계를 깊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을 서서히 놓치고 있었다.
진정한 인간다움은 완벽한 효율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행착오를 겪고, 한계를 마주하며, 때로는 불필요해 보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그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발현된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 흘려 가꾼 텃밭의 채소가 단순한 유기농을 넘어선 생명의 가치를 지니듯, 몇 번의 실패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손뜨개 스웨터는 그 어떤 명품보다 깊은 사연과 따스한 감동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결과물을 넘어선 시간의 축적이며, 고통스러운 노력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지털 화면 속에서 완벽하게 편집되고 걸러진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지만, 실은 불완전함 속에서 얻어지는 좌절과 성취의 반복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귀한 자양분이다. 철학자들은 일찍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육체적 노동이 인간을 비로소 주체적인 존재로 세우고, 자신의 흔적을 세계에 남기는 행위라고 말이다. 고된 땀방울이 배어 있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단절된 소통과 익명성 기반의 간편한 텍스트 대화는 피상적인 관계만 양산하기 쉽다.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의 떨림까지 느끼며 오가는 '불편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공감과 이해를 배운다. 때로는 서투르고, 때로는 감정이 격해지고, 때로는 침묵이 흐르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내하고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신뢰와 사랑이라는 견고한 탑을 쌓아 올린다.
관계 맺음의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고, 타인과의 깊은 연결에서 오는 충만감을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다. 마치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비로소 광활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주할 수 있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때로 '불편한' 과정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경지를 경험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의 감각과 인성, 그리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의지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편리함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불편함’을 재발견하자는 것은, 기계가 주는 효율성이라는 안락의자에 깊이 기대어 ‘인간다움’이라는 근육이 퇴화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제안이다. 기술은 우리 삶의 도구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빠르게 발달해도, 그들에게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불완전함 속의 창의성, 실수에서 배우는 회복 탄력성, 그리고 계산되지 않는 공감과 사랑의 영역이 부재하다.
이제 우리는 삶의 태도를 전환해야 한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과 즉각적인 반응의 압박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멈춤'을 선택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흙의 감촉, 느린 걸음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길가의 작은 꽃,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솟아나는 기지. 이런 '불편한' 감각들이 오히려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삶의 미학은 효율의 극단에 있지 않다. 그것은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인내, 노동 속에서 얻어지는 성취감, 그리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강인함에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작은 용기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 더 깊고 풍요로운 경험으로 이끌 것이다.
기술이 편리함의 극한을 향해 질주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적인 ‘불편함’의 가치를 돌아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삶에 끌어안아야 할 시점이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 안의 '불편한' 감각들을 깨워 삶의 미학을 다시금 발견할 시간이다. 잃어버렸던 불편함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삶에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편리함에 잠식당하지 않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바로 그 '불편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빛나는 존재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지혜는 ‘불편함’과의 재회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