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작은 다르다. 다르므로 명작이다. 명작의 다른 말은 시간이다. 시간의 향기를 품고 숙성하고 또 숙성해서 마침내 약보다 좋은 음식이 되는 것처럼, 명작은 우리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명작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그러니까 재료가 좋아야 하고 그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 하듯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배가된다. 나는 그 명작을 꼽으라면 ‘남과 여’를 꼽는다. 꼽은 손가락이 부끄럽지 않은 영화다. 프랑스 사람들의 대중예술에 대한 가치가 발현된 영화 ‘남과 여’는 잘 숙성된 포도주 같은 영화다.
1966년, 파리는 상당히 세련되었다. 사대주의라고 비난해도 할말은 없다. 파리 사람들은 낭만의 치사량이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뭔지 모를 우울을 덕지덕지 안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젊은이들은 모더니즘에 흠뻑 취해 새로운 것을 탐닉하며 예술을 끌고 가고 있었다. 파리만 그랬을까. 전후 세대들은 전쟁으로 축난 그 자리를 채우며 쑥쑥 자라나고 문화는 전쟁이라는 호재를 만나 더 치열하게 새로움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남과 여’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맞닿아 우울하면서 낭만적인 파리 연인들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남과 여’는 클로드 를루스가 감독하고 아누크 에메와 장루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클로드 를루스는 ‘남과 여’를 만들기 전 파산 직전이었다. 그러다가 ‘남과 여’를 단기간에 완성하고 개봉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돈방석에 앉았다. 아누크 에메와 장루이에게도 성공 가도를 달리게 해준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메인 OST는 음악프로를 다 석권했고 음반으로 발매되어 영화음악의 상위 차트에 올랐다. 잘 만든 영화가 여러 사람을 살리고 대중에게 사랑받으면서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오르고 주인공들은 배우로 성공하게 된다.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장루이는 30대 중반으로 아내와 사별한 카레이서다. 르망 24시 경기중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후 그 사고를 목격한 아내가 남편이 죽은 줄 알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만다. 그 후 장루이는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고 있었다. 일요일이면 기숙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 안느는 영화 스트립터로 일하다가 스턴트맨이었던 남편을 사고로 잃고 혼자 딸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안느는 영화 촬영으로 인해 일요일에 딸을 만나러 오면서부터 장루이와 마주치게 된다.
어느 날 안느가 파리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치게 된다. 다시 딸이 있는 기숙학교로 돌아와 장루이를 만난다. 사정을 들은 장루이는 그녀를 태워다 주겠노라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그 일로 같이 가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친해지게 된다. 장루이는 안느를 내려주면서 다음 주말에 함께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의한다. 안느는 선뜻 전화번호를 장루이에게 준다. 다음 경주를 준비하면서 바쁘게 지낸 장루이는 안느는 주말에 만나 비가 오는 도빌을 드라이브한다.
서로에게 끌린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면서 보트도 타고 노을이 지는 해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그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장루이는 프랑스 남동부 몬테카를로 랠리를 준비하고 운전 연습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안느는 빙판이 된 도로를 따라 악천후 속에서 진행되는 랠리 경주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브라보, 사랑해요. 안느가’라는 전보를 장루이에게 보낸다. 그날 밤 몬테카를로의 운전자들을 위한 저녁 식사에서 장루이는 안느가 보낸 전보를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를 만나러 떠난다. 장루이는 도빌에 도착해서 안느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해변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은 격렬한 포옹을 한다.
“새벽 파리는 늘 아름다워, 모든 게 내 거야”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내려준 다음 장루이와 안느는 시내로 차를 몰고 가서 호텔에 들어간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한다. 그러나 장루이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느의 마음을 헤아리지 것이다. 안느는 죽은 아직도 남편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런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장루이와 함께한다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안느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혼자 기차를 탄다. 장루이는 프랑스 남쪽 기차역까지 차를 몰고 간다. 마침 안느가 도착한다. 안느는 장루이를 발견하고 잠시 놀라지만 그에게 걸어가 포옹한다.
‘남과 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서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단순한 로멘스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사랑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인간은 선택하는 동물이다. 매순간마다 선택에 의해 살아가면서 그 선택의 책임까지 짊어지고 간다. 선택은 삶의 복잡성과 얽히게 되고 가치관과 충돌하기도 한다. 우리는 ‘남과 여’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또 누군가와 영원한 이별도 한다.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남자와 여자는 기억과 추억을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살아간다. 영화처럼….
“사랑은 모든 걸 잊게 해주고 다시 기억나게 해줘요”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