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서머싯 몸의 단편 ‘점심’에서 보는 인간의 염치없음과 사람 구실

민병식

서머싯 몸(1874-1965)은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 고문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모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숙부 밑에서 자랐다. 1897년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작가로 전향했고, 인간의 굴레, 케이크와 맥주, 면도날, 달과 6펜스 등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으며 장·단편소설, 희곡,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는 작가이다.

 

파리에 살고 있던 주인공의 직업은 작가다. 작가는 공동묘지가 내려다보이는 라탱 지구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조금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글을 쓰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수준의 가난한 작가의 책을 읽고 어느 여성이 감상평을 적어 보내온다. 작가는 이에 감사의 답장을 보냈는데 이후 그녀는 파리를 지날 일이 있으니 작가와 만나 문학에 대해 토론하며 점심 대접을 받고자 한다며 편지를 보내온다. 

 

작가의 생활 수준으로는 턱도 없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말이다. 작가는 펜레터를 거절할 배짱이 없었기에 그녀를 식사에 초대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점심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읊어 대는 그녀의 탐욕스러운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더니 값비싼 요리들만 골라 주문하는 그녀는 아마도 악한 뜻을 가지고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한 가지 요리만 먹겠다고 처음엔 연어를 주문하더니 연어를 기다리는 동안 캐비어를 주문하고 거기에 곁들여 샴페인까지 주문한 그녀는 자신은 원래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한다. 작가는 돈이 없어 자신의 식비라도 줄이고자 가장 저렴한 양고기 편육을 주문하는데 그녀는 편육 같은 무거운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어떻게 창작을 하실 수 있으실는지 모르겠다며 지적질을 한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소설의 절정은 다른 장면에서 나타난다. 귀한 아스파라거스를 주문하는 데서 작가의 고난은 비로소 시작한다. 과거의 유럽에서 아스파라거스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겼고, 심지어 왕의 채소라고 불리기도 한 엄청나게 비싼 음식이었다. 작가는 가슴이 철렁한다. 아스파라거스는 구경만 해 봤을 뿐 작가도 한 번 먹어보지 음식, 큰 아스파라거스가 있냐고 종업원에게 물어보면서도 내심 없다고 말해주길 기대하지만 얄밉게도 아주 크고 맛있는 아스파라거스가 있다는 종업원의 대답에 점심식사 비용을 지불하면 생활비로 얼마를 남겨둘 수 있을지 고민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주문하면 식사비용을 전부 지불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불어난다. 아스파라거스가 나왔다. 큼직하고 즙이 많은 것이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어 보였는데 염치도 는 그 여인은 아스파라거스를 욱여넣고 씹어 삼켰으며 작가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발칸 반도의 연극계 정세에 대해 논의해야만 했다.

 

염치의 뜻은 체면을 차리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한다. 작품의 여인처럼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이것저것 시키며 마구 먹어대는 태도는 몰지각한 염치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상호작용을 하는데 겉으로 표현을 못하겠고 결국 뒤돌아서서 욕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불리는 뒷담화하고는 다르다. 즉 염치없다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과 같다. 

 

자신의 마음 안에 미안함, 순수함, 예의, 배려, 양심 등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심리적 질병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 결국 인성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어, 영어, 수학 등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교육보다 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감사하고 만족한 삶,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 법과 질서를 지키려는 마음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식이 높고 물질이 많아도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것이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5.10.15 10:41 수정 2025.10.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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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